아랫사람과 친해지기 (feat. 군자의 레벨)

날큐의 단상

by 날큐

윗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왔다. 요즘 시대에 위아래를 운운하는 건 꼰대처럼 보일 수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특별히 살갑게 군 것도 아닌데, 윗사람들은 의아할 정도로 나를 좋아한다. 윗세대가 좋아하는 바이브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회사생활은 수월했다. 그렇다고 아랫사람들과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가깝지 않다는 표현이 적절한 만큼의 관계만을 유지했을 뿐이다.



문제는 퇴사 후에 찾아왔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리더에게 더 이상 윗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아랫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윗사람과의 관계는 수학 문제와 같다. 정답이 있다.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가며 적극성을 보이면 된다. 다가오는 후배를 마다할 선배는 드물다. 지켜야 할 선도 뚜렷한 편이다. 아랫사람과의 관계는 다르다. 마치 심오한 철학적 물음에 답하는 것 같다. 지켜야 할 선이 뚜렷하지 않다. 중용(中庸)만이 살 길이다. 지나쳐서도 모자라서도 안된다. 업무에서 뛰어난 면을 보여야 하지만 위화감을 주면 안 된다.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관계는 어그러진다. 뿐만 아니다.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워야 한다.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이어야 한다. 아랫사람을 이해해야 하지만 사적인 부분을 침범하는 것은 죄악으로 치부된다. 필요한 건, 군자(君子)의 경지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군자이다. 그 녀석이 직장 후배와 통화하는 걸 보면 마치 그냥 친한 동네 동생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편안하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편한 선배만으로 머물지도 않는다. 후배들이 먼저 연락해서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니 말이다. 한 마디로 그 친구는 좋은 선배이다. 윗사람의 외로움에 지쳐갈 때쯤, 나는 물었다. "어떻게 하면 후배들과 그렇게 잘 지낼 수 있어?" 잠시 생각에 잠겼던 친구는 답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 친구들이 잘됐으면 좋겠어."







군자에는 세 가지 레벨이 있다. 우선, 용자(勇者)이다. 용자는 바른 것을 좋아하고 바르지 않은 것을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와 같은 사람이다. 군자의 입문 레벨로 공자도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다. 다음은 지자(知者)이다. 지자는 지인(知人)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을 알아보고 놓여야 할 자리에서 쓰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는 자공이 대표적이다. 지자는 똑똑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눈썰미가 있어 상대에 대한 파악이 빠르다. 리더의 덕목도 갖췄다. 자공이 공자 사단의 회계이자 물주(?)였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공자는 자공의 총명함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아쉬워하는 눈치이다. 군자 최고 레벨은 인자(仁者)이다. 인(仁)은 애인(愛人)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공자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 안회를 꼽을 수 있다.



친구는 군자에서도 가장 높은 레벨인 인자였던 것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을 쓴 로버트 그린은 어림없는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랫사람들을 이끄는 힘은 진심이다.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진짜 마음이다. 물론 나도 후배들이 잘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스스로 잘되기를 바라는 만큼 후배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을까? 그 정도는 돼야 진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외로움은 내가 자처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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