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독서

by 날큐

책을 읽다 보면 글이 쓰고 싶어 진다. 창작물에 대한 관심은 창작자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창작자를 동경하게 되고 또 그러다 보면 "나도 창작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찾아다니다 보니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를 여러 권 읽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베스트셀러도 그리 대단치 않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고, 또 그러다 보니 "나라고 못하겠나?"라는 오만한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참 나다운 시작이다.



생각의 흐름은 이랬다.

'책들이 다 거기서 거기네?'

(어라?)

'그럴듯한 논리만 있으면 책을 쓰겠는데?'

(그건 내가 잘하는 건데?)

'회식자리 부장님 같은 말투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책이 잘 팔리네?'

(이거야말로 내가 진짜 자신 있는 건데?)



생각은 점점 과감해졌고 머릿속 물음표들은 일제히 느낌표로 바뀌는 마법을 보였으며 나는 자뻑(?)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그쯤 되자 "할 수 있을까?"가 아닌 "못 할 이유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그렇게 나는 불순한 의도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잘 풀렸다. 새로 개업한 식당의 오픈빨처럼 글쓰기라는 분야에서도 초심자의 메리트는 있었다. 글의 소재도 한 몫했다. 평생 자기계발에 진심이었던 내가 퇴사 후에 실제로 많이 고민했던 부분들을 다루었으니 말이다. 진도는 쉽게 나갔다. '내 글의 가장 큰 독자는 나'라는 말이 맞았나 보다. 당시 나는 내 글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내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게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던 중 잿밥에만 관심을 갖던 내가 서서히 염불에도 눈길을 주게 되었다.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일개 아무개인 나의 글을 읽어주는 몇 안 되는 독자들에게 좋은 글을 내놓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내 글이 마음에 안 들었다. 몇 주씩 글을 하나도 올리지 못하기도 하였다. 고민으로 시들어갈 무렵 출간작가이자 글쓰기 스승인 아내에게 조언을 구했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돼?"

아내가 답했다.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돼. 오빠는 문학작품은 잘 안 읽지?

"... "

순간 최근에 읽은 소설 몇 권이 생각났지만 그냥 잠자코 있었다.

(원래 조언을 구할 때는 말을 아껴야 하는 법이다)

"그럼 좋은 글을 쓰기 힘들어.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면"

나를 천재라 우기고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럼 책을 몇 권 추천해 줄 수 있어?"

"음.. 우선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몇 권 빌려줄게"



그렇게 해서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과 더글라스 애덤스의 《마지막 기회라니?》를 읽게 되었다. 두 권 다 에세이였다. 나에겐 낯선 장르였다. 당시 나는 도움이 될 거 같은 책만 읽었고 에세이는 그다지 쓸모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책은 잘 읽혔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빌 브라이슨의 자조적인 유머는 나를 '피식' 웃게 하였고 더글라스 애덤스의 기발한 묘사는 나를 '키득' 거리게 하였다. '피식'이던 '키득'이던 분명한 건 이들의 글은 재미있었다. 그리고 읽기 편했다. 무언가 있어 보이고 멋들어진 표현이 가득한 초보 작가지망생 - 바로 나다 -의 글과는 달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글은 의외로 솔직하고 담백했다. 체크 포인트!!



그렇게 어찌어찌 나의 야심 찬 첫 연재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첫 연재로 브런치북 공모에 도전했다. 당시 나는 4개월 차 작가지망생이라는 신분을 잊고 당돌하게도 입상을 기대했었다. 이유는 있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10개의 출판사가 10개의 작품을 선택하여 출판하는 프로젝트인데, 그 해에는 브런치 10주년을 맞아 40개의 특별상을 신설하였다. 즉, 수상할 확률이 5배나 높아진 것이었다. 하지만 미처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상이 많으면 지원자도 많아질 줄이야. (누군가가 친절하게 분석해 놓은 자료에 의하면) 대상의 경쟁률은 470 대 1, 특별상은 94 대 1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꽤 눈에 띄었다. 당연히 떨어졌다. 하지만 충격적이었다. 베스트셀러를 꿈꿨는데 특별상도 못 받다니. 나의 오만을 반성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운이 없음을 한탄했다. 글을 쓰기는커녕 한동안은 브런치 채널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눈치 없이 커다랗고 또렷한 '브런치북 수상작 보기'라는 문구가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문득 수상작들이 궁금해졌다. '왜 이들은 붙고 나는 떨어졌지?'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왜 실패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하는 건설적인 생각에 '얼마나 잘 썼길래?' 하는 옹졸한 마음까지 더해지며 나는 비로소 '브런치북 수상작 보기' 탭을 누를 수 있었다.



수상작들은 우선 기획이 좋았다. 분명 글솜씨는 작가들 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흥미를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은 같았다. 소재는 참신하거나 공감이 가거나 둘 중 하나에는 해당하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기획에 맞는 '톤 앤 매너'를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반면 내 글은 어중간했다. 소재나 기획은 공감이 갈만하였지만 어조가 왔다 갔다 했다. 자기계발서와 에세이 사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또 한 가지는 글이 편안했다는 점이었다. 문득 아내가 추천해 줬던 책들이 떠올랐다. 앗! 체크 포인트! 좋은 글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글이구나. 알려줘도 모르다니.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내가 너무 좋은 글이라며 추천해 준 책이 한 권 떠올랐다. 너무나도 잘 쓴 글이라 필사까지 해보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책은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였다. 읽어보니 좋은 책이었지만 글 좀 쓴다는 아내가 필사까지 했다는 점은 의아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젠 좀 알 듯도 하다. 핵심을 관통하면서도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내공이고 그것이 고수의 글쓰기라는 것을.



그 후로 에세이를 좀 읽고 있다. 편안하고 감성적인 에세이에서부터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화려한 문장으로 무장한 김혼비 작가 - 나에게 타고났다는 것의 무서움을 알게 해 준 작가이다 - 의 에세이까지. 폭넓게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올해에도 브런치북 공모에 지원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아내와 같이 하는 연재까지 총 3개를 넣는 게 목표이다. 그리고 여전히 수상을 기대하고 있다. 안 되면 무척 아쉽겠지만 그래도 작년처럼 허탈하지는 않을 듯하다. 글을 쓰면서 에세이를 읽게 되었고 그 매력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와 독서. 이와 잇몸 같은 관계이다. 글을 쓰면서 독서의 영역은 넓어지고, 책을 읽으면서 나의 글쓰기는 단단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전 13화지식 릴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