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릴레이

by 날큐

어릴 적 달리기를 잘했다. 유독 짧은 거리에 능했다. 100 미터 달리기는 주로 '주먹 좀 쓴다'는 친구들의 전장이었다. 그 사이에서 하얗고 키만 큰, 쥐가 날 때야 비로소 근육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야리야리한 소년이 무서운 친구들을 곧잘 이기곤 했다. 흔히 릴레이라 불리는 계주를 가장 좋아했는데, 이유는 나라는 인간만큼이나 단순했다. 마지막 주자 - 보통 계주에서는 잘하는 사람이 마지막에 뛴다 - 로 들어오는 순간의 멋짐. 찰나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사랑했던 거 같다. 이 짧은 시간은 소심한데 스타 의식은 있는 이중적인 소년의 욕구불만을 해소시켜 주기에 충분하였다.



마흔이 넘어서 릴레이를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전장은 트랙이 아니었다. (말하기 민망하게도) 내 머릿속에서였다. 평소 이런 오글거리는 멘트를 여름 바닷가의 모기, 아니 경주 안압지를 헤엄쳐 다니는 커다란 쥐, 아니 기다리던 야구 경기 날에 내리는 비만큼이나 싫어하는 나이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의 향연은 그만큼 강렬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마흔의 책 읽기에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자연스레 실용서 위주의 독서 편식이 이어졌다. 인생을 바꿔준다는 자기계발서 - 실제로 바꿔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 와 써먹을 데가 있다는 경제경영서 - 진짜 써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 위주였다. 지식을 주입하는 책들이다. 그렇다고 실용서가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런 류의 책들은 대개 하나의 메시지를 준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이 한 가지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장을 채워나가며 어느샌가부터 나의 독서 취향은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젠 저자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전달하는 책보다는 나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을 선호하게 되었다. 내 경우에는 전기문이 대표적이다.



독서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읽게 된 전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창한 이유는 없었다. 책을 읽다 보니 다빈치라는 이름이 자꾸 언급되었고 한두 번은 그냥 넘겼는데 반복되다 보니 궁금해졌다. 게다가 세계의 성공한 사람들은 독서를 즐기며, 특히 전기를 많이 읽는다는 통계를 어디선가 읽었던 참이었다. 국내에서는 전기문이 별로 인기가 없는지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월터 아이작슨의 책을 골랐다 - 첫 책에서 월터 아이작슨이라는 뛰어난 작가를 만난 건 행운이다 -. 책은 잘 읽혔다.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그동안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위대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용서에서는 한 줄로 축약되었던 메시지가 그들의 삶에 녹아들며 천재의 이야기를 더욱 실감 나게 해 주었다. 이런 게 독서의 기쁨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자 저자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스티브 잡스, 아인슈타인, 제니퍼 다우드나 등 국내에 발행된 월터 아이작슨의 책들은 모조리 사게 되었다 -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 심지어 절판된 《벤자민 프랭클린, 인생의 발견》은 정가의 몇 배나 되는 돈을 주고 중고로 구하기까지 했다. 득템을 할 때면 언제나 그렇듯 핑계는 있었다. 요즘 물가를 감안하면 지금 출판되더라도 이 정도 가격은 될 거라는 .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를 읽고 있을 때였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광자효과로 노벨상까지 받은 아인슈타인이 끝내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양자 같은 일이! - 양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인 매우 역설적인 개념이다 - 그 배경에는 아이작 뉴턴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물리학을 저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뉴턴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가 그를 부정하기 어려웠던 걸까? 아이작 뉴턴으로 갔다. 좀 찾아보니 뉴턴에 일생을 바친 전기작가가 있었다. 바로 리처드 S. 웨스트폴이었다. 국내 발행된 책은 4권의 세트로 되어 있었다. 그것도 1,200부 한정판이었다. 물론 절판이었다. 최고의 뉴턴 학자가 일생을 바쳐서 썼다는 데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한정판이라 그런지 구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중고가가 어마어마했다. 물가 상승도 핑계가 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식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이유를 대며 - 내가 재무팀 에이스로 오랜 기간 군림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 구매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한정판 《아이작 뉴턴 세트 (NEVER AT REST)》는 내 손에 들어왔다.



채 몇 쪽도 읽지 않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웨스트폴은 그리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월터 아이작슨에 비해 과학사학자인 웨스트폴은 딱딱했다. 평소 숫자를 그리 두려워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뉴턴의 수학과 그래프들은 비전공자에게는 버거웠다. 꾸역꾸역 읽어나가는 동안 수학을 공부해야겠다는 결심도 단단해져 갔다. 어찌어찌 책을 다 읽고 나서 수학으로 눈을 돌렸다. 이때 만난 책이 《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이다. 김민형 교수는 세계적인 석학임에도 불구하고 웨스트폴과는 결이 달랐다 - 아마 웨스트폴은 전기의 특성상 아이작 뉴턴이라는 천재의 인생을 담느라 수학을 쉽게 풀어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 친절한 문체와 알기 쉬운 설명은 마치 할아버지가 손녀를 앞에 두고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이었다. 이때의 기억이 좋았는지 이후 익숙하지 않은 분야는 역사부터 접해야 한다는 독서 철학까지 생겼다.



그 후로도 '지식 릴레이'는 시작했다 끝났다를 반복하였다. 때론 한 권의 책에서, 때론 한 사람의 작가에서, 때론 특정 주제에서 마치 여의도 불꽃축제에서 폭죽이 터지듯 갑자기 시작되었다가 갑자기 사라지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의 독서는 단단해졌다. 어릴 적 계주와는 달리 마지막 장면만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과정이 소중했다. 그리고 소중한 하나하나가 나를 성장시켰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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