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태스킹은 허상이라고 한다. 인간의 뇌는 애초에 한 가지만 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동시에 두 가지 일은 할 수 없으며, 설사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느낌일 뿐이고 실제로는 빠른 속도로 태스크 스위칭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무리하게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하려 하면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작업이 전환되는 시간이 낭비되며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창의력이 빛을 발한 순간, 천재들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나치게 산만했던 다빈치는 차치하고서라도, 1년 동안 4가지 주제를 동시에 진행하며 '기적의 해'를 만들어냈던 아인슈타인이나 난해한 외교문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과학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던 프랭클린, 사업을 항상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면서도 시답지 않아 보이는(?) SF소설을 붙잡고 있었던 일론 머스크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그들은 혼돈 속에서 새로운 것을 끄집어냈다.
이 역설을 하나의 개념으로 정리한 것이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이다. 그는 2018년 TED 강의에서 '슬로모션 멀티태스킹'이라는 용어를 주창하였다. 그에 따르면 창의적인 인물들은 일정기간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오가며 느린 속도로 멀티태스킹을 한다고 한다. 말장난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가 창의적인 사고의 과정을 명확히 이해하고 날카로운 생각을 세상에 내놨다고 생각한다. 자칫 상반된 것으로 보이는 멀티태스킹과 몰입을 하나의 개념에 자연스레 녹여냈으니 말이다. 멀티태스킹을 싫어할 법한 《몰입》의 저자 칙센트미하이 교수도 만족할 만한 결론이다.
지나치게 느리기는 했지만, 아마 인류 역사상 하포드의 이론을 가장 잘 구현했던 인물이 아이작 뉴턴이 아닌가 한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전 물리학의 지배자였다. 사실 '과학'이라는 말도 뉴턴이 등장한 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뉴턴 이전에는 과학을 자연철학이라고 했다고 한다 -. 그는 수학에서도 엄청난 흔적을 남겼다. 양자역학이 등장하기 전- 다시 말해 수학에서 확률의 비중이 높아지기 전 - 수학의 중심이었던 미적분을 만든 사람이 바로 뉴턴이었다- 라이프니츠와의 우선권 논쟁이 있다 -. 뿐만 아니다. 그는 화학과 신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말년에는 조폐국장을 역임하며 '일잘러'로서의 모습마저 보여준다.
17세기는 뉴턴과 같은 천재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시기였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를 지배해 왔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거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여러 분야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이 시발점이었다. "지구는 돈다"라는 한마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갈릴레오의 망원경은 미친 소리인 줄 알았던 지동설에 힘을 실어 주었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빠져들었다. 우주,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매혹적이었다. 이에 발맞춰 수학에서는 대수학과 기하학이 만나며 미적분의 탄생을 암시하였고 화학은 점차 연금술에서 벗어나며 과학다운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뉴턴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말도 안 되는 위업 뒤에는 흉내내기조차 어려운 천부적인 두뇌가 있었지만, 또 다른 기술이 하나 숨어 있었다. 바로 뉴턴의 무기인 '그만의' 멀티태스킹이었다. 그의 '멀티태스킹'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는 순간에 몰입했고 평생 동안 반복했으며 결국 이것저것을 연결하였다.
무언가에 몰입했을 때의 뉴턴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는 환시를 시험하기 위해 오랜 시간 태양을 바라보다 눈이 망가질 뻔하기도 하고 눈의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눈과 뼈 사이로 뜨개바늘을 깊숙이 밀어 넣기도 하였다. 화학을 연구할 때는 다양한 중금속을 맛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뉴턴은 말년에 간헐적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는데, 사후 실시한 모발 검사에서는 다량의 수은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한 번은 접대할 친구가 방에 있는데 포도주를 가지러 서재에 갔던 뉴턴이 돌아오지 않았다.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이 정도니 무언가에 꽂히면 잠도 자지 않고 먹는 것도 잊어버리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뉴턴이 항상 한 가지에만 몰입한 것은 아니다. 하나에 집중하기도, 때론 두세 가지를 번갈아 가면서 연구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무엇을 하던 그 순간만큼은 순도 100%로 몰입했다는 점이다.
뉴턴은 한 번 시작한 관심사를 쉽사리 놓지 않았다. 그의 연구는 대개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무언가에 흥미가 생기면 그는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모조리 읽었다. 그리고 집대성하였다.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색인을 적어가며 즐거워하였다. 그의 노트는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그 주제로 돌아갔을 때에도 바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깔끔했다. 폭풍이 휘몰아치듯 몰입의 시간이 지나가면 뉴턴은 곧잘 싫증을 내며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내 다시 돌아왔다. 이전에 작성한 노트를 뒤적이며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완벽을 향해 갔다. 이런 패턴은 그의 평생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계속되었다. 뉴턴은 이렇게 여러 주제를 번갈아 가며 평생에 걸쳐 연구했다.
1905년이 아인슈타인에게 '기적의 해'라면 뉴턴은 1666년이다. 18개월 동안 수학에 빠져있던 뉴턴은 역학과 광학으로 연구를 확장해 나간다. 그리고 '기적의 해'를 맞이한다. 그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빛의 기본적인 성질을 규명했으며 미적분- 뉴턴은 미분을 유율법이라고 불렀다 -을 발명했다. 이 모든 것을 해내는 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1년이었다. 하지만 뉴턴은 이 중 어느 하나도 즉시 발표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면 필연적으로 뒤따라오는 논쟁을 무척 싫어하기도 했다 -. 그는 결국 수십 년 동안 뜸을 들이며 다듬은 후에야 발견한 것들을 하나하나 세상에 내놓는다.
뉴턴은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 한 가지만 밀고 나가지 않았다. 대신 다른 주제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그 분야로 돌아왔다. 그렇게 뉴턴은 평생 동안 - 화학과 신학을 더해 - 5가지 주제를 번갈아 가면서 연구했다. 이런 뉴턴의 방식은 효과적인 듯하다.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들이 연결되며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으니 말이다. 그는 운동법칙을 수학으로 풀어낼 수 있었고 화학에 역학의 원리를 적용할 수 있었다. 신학을 연구할 때는 수학에서나 적용할 법한 해석학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하였다. 그 결과물들은 대단했다. 세상을 바꿨다고 평가받는 책들인 《프린키피아》와 《광학》을 포함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뉴턴은 평생에 걸쳐 멀티태스킹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몇 가지 주제를 띄엄띄엄 번갈아가며 반복적으로 해 나갔으니 말이다. 천재들 중에는 의외로 뉴턴의 방식으로 위대한 결과에 다가선 사람들이 많다. 특히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그렇다. 다빈치가 대표적이다. 몰입의 기간은 비교할 수 없었을 정도로 짧았지만 그는 미술, 음악, 과학, 공학, 건축 등 셀 수 없이 많은 분야를 섞어가며 생각을 숙성시켰다. 프랭클린도 마찬가지였다. 정치, 외교, 발명, 글쓰기, 사업 등에 번갈아 가며 몰입하였다. 중간중간 휴식을 섞는 경우도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일이 안 풀릴 때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배를 타고 나가기도 했고 피카소는 투우 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다. 아무튼 그들은 여러 가지를 돌아가며 반복적으로 했다. 그리고 순간에 몰입했다.
우리 대부분은 뉴턴처럼 몇 개월씩 한 가지에 몰입하기 어렵다. 다빈치처럼 방대한 분야에 호기심을 보이기도 어렵다. 더군다나 우리에게는 그들의 두뇌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을 차용할 수는 있다. 각자의 역량과 관심사, 여건에 맞게 나만의 '슬로모션 멀티태스킹'을 만들어갈 수 있다. 다양한 것들을 순간순간 몰입하며 반복적으로 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창의적인 순간이 몇 번은 찾아오지 않을까? 천재들의 삶을 연구하고 나에게 적용해 가면서 막연한 기대는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 방법은 알았으니 지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결국 노력과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왜 진실은 이토록 뻔한 말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