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지식인들의 지식인이다. 시간과 무한이라는 심오한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짧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그의 스타일은 작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가들만이 아니다. 철학자들도 그의 팬을 자처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두주자인 데리다는 그의 저서에서 보르헤스의 글을 수차례 인용하였으며, 푸코는 한 술 더 떠 이렇게까지 말했다고 한다. "보르헤스의 글은 지금까지 간직해 온 내 사고의 전 지평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고작(?) 변방의 작가 한 사람이 -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 시대를 대표하는 고매한 철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 밖에도 다양한 분야의 발전이 그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전 세계를 연결하며 세상을 바꾼, '월드 와이드 웹(www)'의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망은 보르헤스의 '미로'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고 하며 영화계의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도 보르헤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수차례 고백한 바 있다.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이라는 도화지에 자신만의 우주를 그려나갔다면 보르헤스는 문학에서 우주의 본질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보르헤스는 흔히 '도서관의 작가'라고 불린다. 그는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에서 살다가 도서관에 묻혔다'라고 할 정도로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나는 항상 작가로서 보다는 독자로서 우수했다"라고 할 만큼 독서를 사랑했다. 책을 읽고 쓰는 것 이외에 그가 가졌던 유일한 직업은 도서관 사서였고 그나마도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책을 읽으면서 보냈다. 6대째 내려온 유전병과 과도한 독서로 실명한 이후에도 그동안 읽은 책을 머릿속으로 되뇌거나 가족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며 독서의 끈을 놓지 않았다. 보르헤스의 인생은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묘사한 눈먼 도서관장 호르헤 그 자체였던 것이다- 물론 보르헤스는 빌런이 아니다 -. 이 정도면 독서에 미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깊고 방대한 독서는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다. 스스로 인정하기를 "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없고 나는 많은 일들을 읽었을 뿐이다"라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보르헤스는 독서를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를 넘어 창작 활동의 핵심으로 보았으며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알렙》에서 우주의 모든 지식이 한 점에 응축된 공간을 묘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책은 보르헤스의 우주였으며 독서는 그가 우주를 알아가는 방식이었다.
독서는 보르헤스의 문학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는 기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는데 그치지 않고 차용의 과정을 거쳐 재탄생시켰다. 그의 첫 소설인 《불한당들의 세계사》는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들을 재구성한 작품이며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에서는 '피에르 메나르'라는 가상의 저자를 등장시켜 - 실제 저자는 '세르반테스'이다 - 《돈키호테》를 패러디하고 재창조하였다. 그 밖에도 가장 난해한 작품이라 평가받는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는 C.S. 루이스의 소설 《침묵의 행성을 그리며》를 읽고 썼다고 하며 《원형의 폐허들》들은 구스타프 메이링크의 《골렘》, 《알렙》은 H.G. 웰스의 《유리 달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보르헤스가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기존의 이야기들을 재창조하는 데에는 문학에 대한 그의 독특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문학이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들의 변형과 반복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흔히 '양피지설'이라고 불리는 이 개념은 중세 시대 수도자들이 기존 텍스트를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내용을 덧씌워 사용하는 데서 - 당시 양피지는 비싸고 귀했다 - 발전했는데, 보르헤스는 모든 문학 작품이 이전 작품들의 흔적을 지운 후 다시 쓴 것이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는 모든 책이 한 권의 책으로 수렴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이어졌으며, 《알렙》에서 표현한 모든 지식이 응축된 점이 아마 그 최후의 책일 것이다. 이쯤 되니 보르헤스가 '글쓰기'보다 '독서'를 중시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소 과격하게까지 느껴지는 창작에 대한 보르헤스의 접근에서 우리는 창의적인 사고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인간의 창조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연결하면서 찾아온다. 이것이 공자가 말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고 - 술이부작(述而不作)도 같은 맥락이다 -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방식이며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어낸 비결이다. 이런 면에서 보르헤스는 창의성의 본질을 꿰뚫어 본 듯하다. 평생 독서를 하며 생각의 재료를 쌓고 기존의 지식이 연결되기를 기다렸으니 말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보르헤스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백과사전이라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어려서부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반복해서 읽었으며 서로 다른 언어로 된 여러 출판사의 백과사전을 수집하기까지 하였다. 백과사전은 그에게 지적 유희의 도구이자 글쓰기의 길잡이였으며 창의력의 원천이었다. 그는 백과사전을 읽으며 호기심을 해소함과 동시에 확장해 나갔으며 다음 장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모르는 백과사전만의 독특한 구성- 백과사전은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어 다음 주제를 예상하기 어렵다 -에서 스릴과 서스펜스까지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보르헤스가 이 두꺼운 책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독특한 문체일지도 모른다. 그는 대개 사건이나 개념을 정의하거나 요약한 후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런 후에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백과사전 식 서술이다. 이런 방식 덕에 그의 글은 심오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아마 평생 백과사전을 끼고 살며 자연스레 체득한 문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보르헤스는 어떻게 인생의 대부분을 책을 읽으며 보낼 수 있었을까? 그가 독서에 매진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정환경도 무시하기 어렵다.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작가지망생이었다- 심리학 교수이기도 했다 -. 아버지의 서재는 웬만한 사설 도서관 규모였다고 하며 이 공간은 어린 시절 보르헤스의 놀이터였다. 아버지는 작가가 되려고 하는 아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 - 자신의 눈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 7년간 유럽에서 살았으며 자신이 실명하기 전까지 아들이 변변한 직업 없이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게다가 보르헤스의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손자에게 엄격한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게 하였고 덕분에 보르헤스는 손쉽게 많은 지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가족들의 지원으로 그는 결국 5개 국어- 영어, 스페인어, 라틴어, 불어, 독일어 -로 된 책들을 원서로 읽는 독서광이 될 수 있었다.
유복한 환경이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근본에는 독서에 대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다. 보르헤스의 지식욕은 대단했으며 지적 갈증은 나이가 들면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물론 이처럼 지속적이고 방대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독서뿐이었다. 어쩌면 그는 책을 통해 궁극의 지식을 향한 자신만의 무한한 미로를 그려나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보르헤스는 말년에 국립도서관장 자리에 앉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그때 이미 시력을 거의 잃었다는 점이다. 죽어라고 책을 좋아하던 사람이 도서관의 최고의 위치에 올랐지만 읽을 수 없는 이 역설적인 상황은 보르헤스에게 은총인 동시에 징벌이었다. 역시 세상은 아이러니하다.
보르헤스 문학의 중심에 독서가 있었던 것은 자명해 보이지만 그의 말처럼 실제 일어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험도 그의 글에 영향을 미쳤다. 머리를 부딪치는 큰 사고를 겪은 이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남부》를 썼고 술집에서 칼부림 사건을 보고는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집필했으니 말이다. 그 밖에도 자살 시도나 시간 체험 등의 사건도 그의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보르헤스가 세상에 나오기 한 세기 반 전에 태어난 또 다른 위대한 작가에 비하면 "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은 거의 없다"는 보르헤스의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작가는 "나는 경험한 것만 쓴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작품에서 경험과 체험을 중시했으니 말이다.
다음 꼭지에서는 그 작가를 다뤄보겠다.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저자 괴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