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진료

by 날큐

의사의 첫인상은 마치 초등학교 때 봤던 교감선생님 같았다. 그리고 진료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혼나기 시작하였다. 마치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너희 책임이다'라는 것을 못 박고 시작하는 듯하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진료를 기다리느라 1년이라 늦어진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의사가 사과를 했지만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내 기분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진료를 위한 검사는 한 달 전쯤에 있었다. 검사라기보다는 조사에 가까웠다. 당시 제이는 말을 거의 못 했다. 간헐적으로 요구사항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수준이었다. 제이가 내는 음성의 대부분은 의미 없이 단어를 나열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말이라기보다는 소리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이런 아이에게 몇 시간에 걸쳐 심층적인 검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다. 아이를 방에 데리고 가서 하는 검사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원활하게 진행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병원은 이런 사태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 두툼한 종이를 나에게 내밀었다. 검사지에는 제이가 태어난 환경부터 나와 아내의 심리검사까지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질문들이 수십 페이지에 걸쳐 적혀 있었다. 수능 이후로 이렇게 많은 문항에 집중해서 답을 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내는 한의원 진료를 하느라 같이 못 간 탓에 야근을 하고 나서야 두툼한 엄마용 검사지를 건네어 받았다. 아마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문항에 답하느라. 제이를 걱정하느라.

진료 당일은 서둘렀다. 병원 규모에 비해 주차장이 열악한 탓에 혹시라도 늦을까 염려가 되어서였다. 너무 일찍 도착한 데다가 대학병원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대기시간이 더해져 우리는 거의 한 시간 반을 기다린 후에야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제이의 컨디션에 무척 신경을 썼지만 대기실에서 한 시간반이나 기다린 아이의 기분이 좋으리라 없었다.

게다가 그곳은 낯선 환경이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겁보의 얼굴은 굳어졌다. 진료실 한쪽에 장난감과 놀이를 유도하시는 직원분이 있었지만 제이는 무서웠는지 나에게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아마 대구 쪽으로 보이는 의사의 억센 억양도 한 몫했을 것이다. 의사는 제이를 몇십 초 정도 관찰하더니 왜 이제 왔냐는 말로 진료를 시작했다. 그 후 5분가량 계속 혼나고 나서야 특수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3개월 뒤에 오라는 말과 같이.

사실 그 병원의 언어치료실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관이었다. 하지만 진료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대기가 문제였다. 대기는 무려 1년 이상이었다(그나마 대기 누락으로 제이는 1년 반 뒤에 언어치료실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게다가 제이는 지금 언어치료를 할 단계조차 되지 않는다고 했다. 놀이치료와 감각통합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에게 기관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의사는 명함을 건넸다. 집에 돌아와서 명함에 적혀 있는 기관에 전화를 해보았다. 동네 병원에 부속된 치료실이었다. 게다가 거리도 멀었다.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은 나는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제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일 년 전에 아내가 진료를 기다리며 보내자고 했던 그 기관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코로나 키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