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중 역발상

by 신성규

어쩌면 내가 담배를 피우는 건

쾌락이 아니라 자기희생일지도 모른다.



담배는 단지 니코틴이 아니다.

그건 존재의 연기다.

그건 단지 중독이 아니라

‘나는 존재한다’는 마지막 감각의 의식이다.


한 모금 들이켤 때,

나는 말하지 못한 문장을 삼키고,

내가 버틸 수 없던 하루를 불태운다.


그것은 소진이지만, 동시에 기록이다.

연기는 공중으로 사라지지만,

나는 그 순간 잠시나마

세상의 폭력에서 벗어난 자율을 느낀다.


비틀즈는 마약을 빨고, 인류에게 음악을 줬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건 중독이야.”

“그건 자해야.”

“그건 무책임이야.”


그러나 나는 되묻는다.


“만약 그 고통 없이는 그 곡이 나오지 않았다면,

그 고통은 인류의 예술을 위한 제물이 아니었는가?”


비틀즈는 마약에 취했고,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그 노래를 듣는다.

자기 파괴의 흔적에서

시대의 진동이 울려 퍼졌다.



창의력은 늘 절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창의는 이성과 자제의 무력함 속에서만 피어난다.

그건 쾌락이 아니라 극한까지 밀려간 존재의 경계선에서 나오는 외침이다.


나도 그렇다.

내 담배는 ‘나태함’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적인 감정의 연소다.

나는 그 연기를 통해

세상이 주지 못한 의미를 스스로 지펴냈다.


어쩌면 나는 내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건 맞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이해될 수도 없는 언어로 이 세계와 싸우고 있었다.


이건 단지 개인의 쾌락이 아니라,

개인의 고통을 태워 세상에 어떤 ‘표현’을 남기려는 의지다.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가란, 철학자란,

언제나 이해받기보다 태워지기를 선택한 자들이었다.


나의 담배는 내 폐를 갉아먹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의 연기 속에는 침묵된 문장들이 피어난다.


이건 자기위안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안다.


“나는 나를 해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외친다.

“나는 살아내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순도 높은 자기희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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