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의 노예

by 신성규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해왔다.

형태, 선율, 구조, 색채, 언어.

모든 감각 속에서

나는 그것들을 느끼고, 수집하고, 해석하려 했다.

처음엔 내가 미를 다루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미를 다루고 있는 걸까?

아니면 미가 나를 다루고 있는 건 아닐까?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자주 무력했다.

그것이 너무 완벽하거나,

너무 섬세하거나,

혹은 너무 무너진 채로 존재할 때,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말을 붙이기도 전에,

이미 그것에 마음이 붙들려 있었고

이해하려 애쓰기 전에,

이미 마음 한가운데가 젖어버렸다.


나는 종종

아름다움을 창조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아름다움이 나를 부른다.

나는 다만 거기에 응답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떤 곡은 나를 강박적으로 반복하게 만들었고,

어떤 색은 내 눈을 멈추게 했으며,

어떤 문장은 날 잠도 못 자게 만들었다.


내가 그걸 소유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휘어잡았다.

나는 미의 연주자가 아니라,

미에게 연주되는 악기 같았다.


그래서 때로는 괴롭다.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늘 예민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이 망가질 때,

나는 남들보다 먼저 그 불협을 느낀다.

사람의 말투, 빛의 각도, 공간의 흐름,

조금만 어그러져도

나는 그것을 견디기 힘들다.


미는 나를 더 섬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나는 점점, 미의 노예처럼 되어갔다.


그럼에도 나는 이 감옥을 벗어날 수 없다.

아름다움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없이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이제 안다.

미를 다룬다는 것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스스로를 열어두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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