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냄비를 태운 날

by 신성규

아침에 부엌에서 타는 냄새가 났다.

서둘러 달려갔더니

할머니가 냄비를 태우고 있었다.

가스불은 이미 꺼졌지만

시커멓게 그을린 냄비가

싱크대에 털썩 놓여 있었다.


자신이 왜 깜빡했는지 모르겠다며

자꾸 자책한다.


그 순간,

내 마음에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할머니의 시간,

그 오랜 세월이

이제는 조금씩

불을 켜둔 것도 잊게 만들었다.


냄비는 탄 흔적을 남겼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무언가가 자꾸 눈에 밟혔다.

타버린 것은 냄비뿐만이 아니었다.

잊혀가는 기억, 무너지는 신체,

그리고 나의 막막한 책임감.


그 모든 것들이

검은 연기처럼

가슴 속에서 맴돌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부엌에 있었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시간이 사람을 조금씩 태워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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