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내 안에 어린아이가 있었다.
겁도 많고, 상처도 잘 받고,
하지만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 줄 알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밤이면 웅크려 울고,
낮이면 몰래 그림을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가끔 노래도 부르던 존재였다.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살았다.
예술을 한다는 건
결국 그 아이의 말을 듣는 일이었고,
그 아이가 놀라는 감정에
온몸으로 반응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아이가 말이 없다.
어디에도 없다.
내 안에서 조용하고,
단지 뜸뜸이 이어지는 호흡만 느껴진다.
나는 프로작을 먹고
무언가를 잠재웠다.
울음도, 폭발도, 간절함도.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잔잔한 바다가 남았는데,
그 바다는 어딘지 모르게 죽어 있는 느낌이다.
그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나를 미치게 하기도 했지만,
나를 세상과 연결해주던 유일한 존재였는데.
혹시 그 아이는
지금 나를 지켜보는 걸까.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상태로,
안쪽 어딘가에서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그 아이가 다시
울기를 바란다.
슬퍼하기를 바라고,
꿈을 꾸기를 바라고,
세상에 다시 손을 뻗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나는 지금 침묵 속에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