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이 심해졌고,
몸은 경고음을 울리듯 신체화 증상을 쏟아냈다.
목은 경직되고, 가슴이 조이고,
마음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틀 전 프로작을 선택했다.
처음엔 마치 감정의 돛을 단 것 같았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감정이 잦아들고,
생존에 갇혔던 내가
조금은 바깥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곧 이상한 평온이 찾아왔다.
너무 조용하고,
너무 무미건조한.
예전에는 우울해도, 조울의 바닥에 떨어져도
어딘가엔 감정의 심연이 있었고,
그 심연 위로 감수성이 솟구치는 순간이 있었다.
음악 한 곡이 심장을 뒤흔들고,
냄새 하나에도 기억이 쏟아졌고,
말 한 줄에도 눈물이 맺혔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나는
뜨뜻미지근한 감정 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삶이 살아 있다는 감각이 없다.
미각도, 후각도, 음악도
예전처럼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세상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지만,
나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감정의 폭풍은 고통스럽지만,
그 안에는 내가 있었다.
지금처럼 평온한 감정의 표면에서는
오히려 내가 지워진 느낌이 든다.
고요하다는 것이,
이토록 슬플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전의 나는
모든 감각에 과잉 반응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모든 것에 무반응하다.
나는 예술을 사랑했지만
지금은 예술이 나를 외면한 것 같다.
창작은 더 이상 나를 구원하지 않고,
문장은 손끝에서 미끄러지고,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예술가로서 점점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완전한 소멸이 아닐 수도 있다.
무언가가 아주 깊은 뿌리로 내려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봄이 오기 전,
나무들이 온 에너지를 뿌리 쪽으로 내리는 시간처럼.
예술은 때때로
말라 죽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침묵 속에서
내가 다시 나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멈추고, 무너지고,
다시 태어나는 시간.
지금은 닻이 내린 바다.
하지만 배는 멈춘 게 아니다.
고요한 가운데서도
쉼이 지나면 다시 항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