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

by 신성규

전 세계가 잠시 멈췄던 그 순간, 사람들은 삶의 구조가 얼마나 얇은 얼음 위에 세워졌는지를 목격했다. 슬라보예 지젝은 그 틈을 철학적으로 뚫고 들어간 몇 안 되는 사유자였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다시 공산주의를 상상해야 한다.”


그러나 지젝이 말한 ‘공산주의’는

20세기의 낡은 유령이 아니라,

21세기의 새로운 실존적 요청이었다.



1. 팬데믹은 ‘허구적 자본주의’를 벗겼다


우리는 늘 자본주의가 영원할 것처럼 행동했다.

각자의 삶은 경쟁과 소비로 조직되었고,

그것이 우리의 존재 양식이자 윤리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팬데믹은 냉정했다.

시장은 붕괴했고, 국경은 닫혔고, 물자는 통제되었으며,

“무한한 성장”이라는 신념은 생존을 위한 배급 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지젝은 이 순간을

“자본주의의 환상이 걷히는 순간”으로 보았다.

공장보다 마스크가, 이윤보다 공공 의료가,

주가보다 공동체의 안녕이 더 중요해진 시간.

그건 단순한 비상사태가 아니라,

우리가 오래도록 부정해온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2. 공산주의는 강요된 선택이 되었다


지젝은 선언한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야만이냐, 혹은 일종의 새로운 공산주의냐.”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소련식 통제 경제나 당의 전체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지구적 협력, 국가 중심의 계획, 공공 재화에 대한 재인식이다.


백신의 개발과 분배는 국가 간 경쟁이 아니라 연대의 문제였다. 의료와 보건 시스템은 민영화가 아닌 공공의 무기로 기능해야 했다. 각국 정부의 개입은 시장 질서 파괴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복원이었다.


지젝은 팬데믹을 통해


“이윤이 아닌 생명을 중심으로 한 조직화”가 가능함을 보았고, 그 가능성의 이름을 ‘공산주의’라 명명한 것이다.



3. 철학적 귀결


지젝은 이념의 부활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상상력의 귀환을 요청했다.


팬데믹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 동시에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시장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가?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의 안녕보다 우선하는가?

우리는 진정 ‘같은 배’에 타고 있는가?


지젝은 이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윤리, 정치, 경제의 기반을 다시 쌓아 올릴 토대를 제공했다. 그는 철학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사유의 싹을 틔우는 것.



4. 지젝 이후


그의 주장은 급진적이지만, 실은 가장 실용적인 대안일 수 있다. 전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거버넌스. 필수재의 공공적 재조직.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생존을 함께 고려한 구조.


이 모든 것은 과거의 ‘계획경제’가 아닌, 미래지향적이고 윤리 중심의 시스템 재설계다.


그리고 이 모든 구상은 팬데믹이라는 충격 없이 결코 상상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젝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팬데믹은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철학은 더 이상 고상한 취미가 아니다. 이제 사유는 생존이다.


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조건이 바로 그 ‘공산주의적 윤리’라고 보았다. 공산주의는 더 이상 이념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인간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실천적 요청이다. 팬데믹은 우리가 기존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낱낱이 해체했고, 지젝은 그 해체된 틈을 새로운 상상으로 채워넣고자 했다. 그는 철학자가 아닌 구급대원처럼 움직였고, 이념의 재해석을 통해 세계에 산소를 불어넣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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