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딜레마

존재의 간극에 대하여

by 신성규

두 마리의 고슴도치가 있다. 그들은 추운 겨울날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자 다가가지만, 그럴수록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는다. 가까워질수록 고통받고, 멀어질수록 추위에 떤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서로 상처 입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찾아야 한다.


이는 인간 존재의 역설을 상징한다. 우리는 근원적으로 고립된 존재다.

타인의 내면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자신조차 온전히 해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관계를 추구한다. 사랑하고, 연결되고, 이해받고 싶어 한다.

이 딜레마는 쇼펜하우어가 인간의 관계적 고통을 설명하며 사용한 비유지만, 그 너머에는 훨씬 더 심오한 철학적 지층이 깔려 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타자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레비나스는 말한다. 타자는 결코 나의 시선으로 완전히 포착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타자와의 관계는 윤리의 근원이 된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기에, 타자를 해치지 않아야 하며, 거리를 유지한 채 존중해야 한다.

이 거리야말로 ‘존재 간의 윤리적 간극’이다.


또한 이 딜레마는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의 고독’ 개념과도 연결된다.

인간은 세상 안에 던져진 존재이고, 결국 홀로 죽는다.

그 존재의 불안을 덮기 위해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역할, 언어적 유희에 몰두한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워져도, 타자의 고통은 대리될 수 없고, 내 내면은 완전히 전달될 수 없다.


결국 고슴도치 딜레마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상처받으면서도 서로를 원할까?”

이는 단순히 정서적 의존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 자체가 타자를 필요로 한다.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경계 위에서만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계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위험하며, 상처투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근본적 모순 속에 산다.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하나가 되고자 하는 충동.

이것이 고슴도치 딜레마의 실존적 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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