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사유와 나의 사유 사이
쇼펜하우어는 철학이 안 될 때 책을 읽으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독서 권장이 아니다. 철학이 침묵하고, 내면이 탁해질 때, 타인의 언어를 빌려 다시 사유의 흐름을 깨우라는 통찰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또 이렇게 경고했다. “타인의 글을 너무 많이 읽는 사람은 자기만의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남의 시선으로만 세계를 보다 보면, 자신의 눈은 멀게 된다는 것이다.
니체도 비슷한 경고를 남긴다. 그는 독서란 ‘과거의 정신과 싸우는 일’이며, 독자란 ‘자신의 피로 타인의 문장을 읽는 자’라고 했다. 그는 타인의 글을 통과하되, 반드시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발굴해야 한다고 믿었다.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닌, 사유하는 자로서의 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 몽테뉴는 “나는 책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읽는다”며, 독서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기 위한 통로일 때만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나는 이들 철학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책은 자신의 사고가 생기지 않을 때 읽어야 한다. 사유가 멎고, 내 생각이 어둡게 흐를 때, 타인의 문장은 하나의 횃불이 되어준다. 하지만 사유가 넘칠 때, 글을 읽는 일은 오히려 그 불꽃을 꺼뜨릴 수 있다.
철학적 에너지가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면, 그 순간엔 책이 아니라 사유해야 한다. 내 생각이 끓고 있다면, 그 에너지를 가장 먼저 써야 할 곳은 ‘읽기’가 아니라 ‘쓰기’다. 독서는 내면의 고요에 필요한 것이고, 철학은 내면의 불안과 충동에서 솟는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는 콘텐츠 소비 속에 살아간다. 타인의 말, 타인의 분석, 타인의 정리된 결론들이 나의 사유를 대신한다. 그러나 철학은 타인의 언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뚫고 나오는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는 일이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말한다. “철학이란 개념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남의 개념을 재활용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정보의 소비일 뿐이다.
결국 철학은 타인의 글로 시작할 수 있지만, 자신만의 언어를 갖지 못하면 철학자가 될 수 없다. 책은 사유의 시작점일 수 있지만, 도착지는 아니다.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는 건, 어떤 이에게는 자신의 철학을 쓸 기회를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믿는다. 철학은 내면에서 솟아날 때 가장 순수하고, 글은 그 사유를 붙잡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그러므로 철학이 멈출 때, 책을 읽자. 하지만 철학이 살아 있을 때, 나는 반드시 내 언어로 그것을 써야 한다. 그것이 철학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