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속에 갇힌 인간, 흐름으로 탈주하는 인간
헤겔은 세계를 구조로 본다. 모든 것은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다시 합일되어 간다. 정신은 세계를 알기 위해 외부로 나아가고, 그 외부의 대립을 다시 내면화한다. 정신은 구조다. 변증법은 그 구조가 스스로를 전개해 가는 방식이며, 모든 것은 전체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개인은 전체의 한 순간이며, 자유는 필연적 구조를 자각하는 데 있다.
들뢰즈는 다르게 생각한다. 세계는 흐름이다. 정신은 중심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경계에서 흘러내린다. 들뢰즈에게 철학은 구조가 아니라, 생성이며, 사건이고, 탈주다. 개인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접합점이다. 세계는 되풀이되는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의 생성이다.
헤겔은 인간을 ‘전체의 한 부분’으로 본다. 그러나 들뢰즈는 인간을 ‘부분의 집합이자 파편의 결합’으로 본다. 하나는 신의 눈으로 세계를 파악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개미의 몸으로 세계를 기어다니며 느끼려 한다.
헤겔은 통합을 향해 간다. 모순은 체계 속에서 극복되어야 한다. 정신은 끝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고 믿는다.
들뢰즈는 파열을 향해 간다. 모순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차이는 반복되지 않고, 반복은 언제나 차이를 낳는다. 정신은 결코 하나로 통합될 수 없으며, 삶은 언제나 그 경계에서 새롭게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헤겔은 ‘국가’를 찬양하고, 들뢰즈는 ‘무정부성’을 존중한다. 헤겔은 ‘이성의 승리’를 말하고, 들뢰즈는 ‘이성의 틈’을 통해 들어오는 세계의 소음을 사랑한다.
헤겔은 독일의 구조적 정신을 대표한다. 들뢰즈는 프랑스의 감각적 해체를 끌어안는다. 하나는 봉합을, 다른 하나는 분열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둘을 모두 갖고 있다. 우리는 헤겔처럼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다가, 들뢰즈처럼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낀다.
세계는 언제나 체계와 탈주의 이중 리듬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곳에서 철학은 탄생한다. 이성은 구조를 설계하고, 감성은 그 틈으로 흘러간다. 그리하여 인간은 끝내 완성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