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루소

법을 둘러싼 두 철학자의 충돌

by 신성규

법은 억압일까, 해방일까? 법은 나를 제약할까, 아니면 나를 지켜줄까? 이 질문에 독일과 프랑스는 다른 방식으로 답한다. 그리고 그 차이의 심연에는 칸트와 루소가 서 있다.


칸트에게 법은 의무의 형식이다. 그는 자유란 단순한 욕망의 방종이 아니며, 진정한 자유는 자기에게 스스로 법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자율성이란 ‘내가 만든 보편적 법’에 나 자신이 복종하는 상태다. 그래서 법은 외부에서 오는 강제가 아니라, ‘이성’이라는 보편적 기준을 통해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윤리의 형식이다.


반면 루소에게 법은 계약의 결과다. 그는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자유롭지만, 그 자유는 보호받을 수 없는 불안정한 자유였다고 보았다. 그래서 인간은 계약을 통해 공동체를 만들고,

모두의 의지를 집합한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를 통해 법을 세운다. 이때 법은 집단이 나 자신에게 부여한 조건이며, 그 결과로 나는 단순한 자연인에서 시민이 된다.


칸트는 내면에서 출발한다. 개인은 스스로 보편적 법칙을 상상하고, 그 법칙이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칸트의 법은 윤리적 판단의 연장이며, ‘나는 그렇게 행동할 의무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확립된다.


루소는 공동체에서 출발한다. 개인은 나의 의지 일부를 공동체에 위임하고, 그 대가로 타인의 위협에서 보호받는다. 그래서 루소의 법은 정치적 형식이며, ‘나는 모두를 위해 나 자신을 얼마나 조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뿌리를 둔다.


둘 다 자유를 말하지만, 칸트는 도덕적 자유를, 루소는 정치적 자유를 말한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고, 다른 하나는 타인과의 합의 속에서 자유를 찾는다.


이 두 사유는 이후 유럽의 법 제도에도 깊이 새겨졌다. 독일의 법은 고도의 체계성과 추상성을 갖는다. 법은 논리적 완결성 위에 서며, 마치 수학의 공리처럼 작동한다. 반면 프랑스의 법은 혁명의 산물이며, 법은 인간의 감정과 정치적 열망을 구체적으로 반영한다. 법은 해방의 도구이며, 때로는 투쟁의 언어가 된다.


칸트의 법은 나를 올바르게 만들려 하고,

루소의 법은 나를 함께 살아가게 만들려 한다.

하나는 내가 나로 존재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우리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내면의 법과 사회의 계약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한다. 그 어긋남과 긴장 속에서 법은 살아 숨 쉬고, 자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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