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본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걸 말하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
막연히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느끼면서도, 그 감각을 문장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
입술은 무겁고, 손은 멈췄다. 머릿속은 뿌연 안개로 덮여 있다.
문제는, 그들이 무지하거나 게으르다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은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치열함은 오직 정답 맞히기에 최적화된 훈련 속에서 길러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탐구하거나, 세계를 의심하거나, 언어로 사유하는 법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배제되어 왔다.
그렇게 20년을 살아온 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을 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그것이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대학교육은, 사람을 가르치지 않았다.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고, 느끼는 법을 존중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내면’을 외면하게 만들었고,
사회가 요구하는 포맷 안에 자기 자신을 압축하도록 강요했다.
그래서 글을 쓰라고 하면,
자신의 삶이 아닌 논술학원의 논조가 먼저 떠오르고,
말을 하라 하면, ‘맞는 말’만 하려다 아무 말도 못 하게 된다.
한국의 교육은 말한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마.
이미 준비된 말들 중에서 적절한 것을 골라.
그게 어른스러운 거야.”
그러나 나는 반문한다.
자기 목소리 없는 인생이 과연 성숙인가?
타인의 문장만 빌리는 삶이 과연 배움인가?
생각은 발성되지 않으면 죽는다.
감정은 언어화되지 않으면 병이 된다.
말하고 쓰는 행위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를 세계에 등장시키는 방식이다.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학은 무엇을 가르쳤는가?
사유 없는 발표, 감정 없는 리포트, 모순 없는 정답.
그 결과, 사람들은 살아 있는 정신을 잃었다.
이제는 우리가 되묻고, 되돌려야 한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정말 우리 것인가?
우리가 하는 말은 정말 우리의 생각에서 나오는가?
혹은…
우리는 아직, 한 마디도 시작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