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쓴다는 것

by 신성규

나는 가끔, 사람들의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혹은…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가?


내 주변에는,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각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논문이 어렵다고 말한다.

논리적 구성, 참고문헌, 인용 방식… 모두 겁을 낸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진짜 두려운 것은 ‘형식’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울 내용이 비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논문이란 결국, 세상에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다.

그리고 질문이란,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일종의 불편함에서 자라난다.

“왜 이럴까?”, “이게 정말 옳은 걸까?”, “내가 틀린 건가?”

그것은 실은 철학이며, 동시에 고통이다.

그러니 나는 의문을 품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혼란스러워진다.

그들은 정말로 아무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세계가 이미 충분히 설명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뉴스에서 말하는 관점, 직장에서 요구하는 태도.

그 모든 것이 잘 맞물린 구조로 작동하니, 질문은 필요 없고, 대답만 외운다.

논문을 쓴다는 건 그런 세계에 금을 내는 일이다.

스스로 ‘의심’이라는 해머를 들고 벽에 구멍을 내는 일이다.

그러니 의심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 모든 게 고통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질문 없이 살아가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내게 세계는 늘 불완전하고, 그래서 매혹적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완성된 답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정식화’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의심을 구조화하며, 모순을 말로 붙잡으려는 욕망.


문제의식이 없는 삶은 안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철근 없는 건물과도 같다.

견고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호기심이 없는 정신은 조용하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죽음에 가까운 침묵이다.


나는 말하고 싶다.

논문을 못 쓴다는 것은, 글을 못 써서가 아니라 살아 있지 않아서라고.

질문은 곧 존재의 증명이다.

그리고 글쓰기는, 그 증명을 위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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