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비이성의 민주주의

우리가 자유를 포기한 방식에 대하여

by 신성규

코로나19는 단순한 바이러스의 확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진짜 주체’인 시민들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나는 백신 접종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주장했으나, 그 자유는 곧바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마치 ‘공공선’을 해치는 이기심처럼 여겨졌지만, 실제로 백신은 임상 과정이 졸속이었고, 그에 대한 의문조차 말할 수 없었던 사회적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백신 여권, 강제 접종 등에 대한 시위가 벌어졌고, 처음에는 그것이 혼돈의 상징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다. 그 시위는 개인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비이성의 집단처럼 보였던 이들은, 오히려 이성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는 동선 공개라는 명분 아래, 사람들의 일상, 술자리, 연애, 성생활까지도 전 국민에게 노출시켰다. ‘누가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몇 시에 모텔에 들어갔는지’까지 공개되었고, 그것이 당연한 조치처럼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그 행위가 얼마나 감시사회적인 폭력인지를 인지하지 못했다. ‘잘못된 인간’이 지탄받는 사회, 그건 전체주의의 문을 노크하는 첫 번째 소리일 수 있다.


팬데믹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극히 낭만적으로 상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우리는 시민이 이성적일 것이라는 가정에 묶여 있었고, 실제로는 두려움과 분노, 집단동조에 휩싸인 군중에 가까웠다. 진짜 민주주의는, 불편한 소수의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 공포에 기초한 ‘다수의 정의’는 진실이 아니라 폭력일 수 있다.


팬데믹은 하나의 시뮬레이션이었다. 바이러스가 아닌, 정보 통제, 감시, 비난의 ‘사회적 바이러스’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미래의 사회에서, 정부가 또 다른 명분(테러, 바이러스, 환경 등)으로 개인의 정보, 선택, 행동을 규제하려 할 때, 우리는 과연 그것을 분별할 수 있을까?


팬데믹은 우리에게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자유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우리는 ‘선량한 다수’의 이름으로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


진짜 민주주의는 투표의 절차가 아니라,

소수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민주적인 얼굴로

가장 전체주의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두려움에 저항하는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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