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아프다

by 신성규

인간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다. 낱낱이 흩어진 현실의 조각들을 하나의 서사로 꿰고, 혼돈 속에서 질서를 발굴하며, 세상에 내 존재의 자리를 확보하려는 존재다. 언어는 그렇게 생겨났고, 철학과 과학, 종교, 예술은 모두 이 “연결짓기” 능력의 확장이다.


그러나 바로 이 능력—‘모든 것을 연결하고 해석하려는 욕망’은 때로 인간 정신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연결의 폭주, 그것은 곧 망상의 구조다.


철학자, 예술가, 수학자, 혁명가—세상의 구조를 꿰뚫는 통찰자들은 누구보다 복잡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세계를 해석한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현실에서 고립되었고, 결국 광기와 불안, 고통 속에서 무너졌다.


니체는 모든 도덕과 종교, 가치를 “힘의 의지”로 재구성했다. 그의 언어는 날카로웠고, 직관은 예리했지만, 어느 순간 그는 현실을 떠났다. 말에게 껴안혀 눈물을 흘리며 쓰러진 그의 모습은, 위대한 사유가 인간 정신의 한계를 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존 내시, 수학적 천재이자 게임 이론의 창시자는,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가 암호이며 자신을 향한 메시지라고 믿었다. 현실은 거대한 퍼즐판이 되었고, 그는 자신만의 패턴 속에 고립되었다. 그가 본 ‘연결’은 누구보다 정교했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조현병의 언어였다.


이처럼, 과도한 연결 능력은 ‘진실을 향한 길’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로부터의 이탈’로 이어지기도 한다.

의미는 강화되지만, 소통은 단절된다.

사유는 날카로워지지만, 그 안에 갇히게 된다.

세계는 설명 가능해지지만, 혼자만의 방식으로만.


그렇다면 이 연결 능력은 언제, 왜 망상으로 변질되는가?

그 핵심에는 스트레스와 고립이 있다.


고독, 긴장, 사회적 압박, 존재의 불안은 인간 정신에 균열을 만든다.

이때 의미 연결 능력이 발현되면, 그 연결은 ‘현실과의 합리적 관계’가 아니라 ‘내 안의 불안이 만들어낸 해석 체계’가 된다.

현실은 그대로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은 바뀐다.


결국 망상은 무질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논리적이고 일관적인 사유 구조다.

그 구조 안에서는 모든 것이 설명되며, 의심은 제거되고, 오직 확신만이 남는다.

확신은 ‘진실을 향한 확신’이 아니라 ‘고립된 사유 구조의 자가복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부정선거’는 단지 정치적 전략이나 음모론을 넘어서서—그가 실제로 믿고 있는 믿음이라는 점에서 분석이 필요하다. 만약 그가 그것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전략이지만, 진심으로 믿고 있다면, 그것은 정신적 증상이다.


그는 아프다.


여기서 “아프다”는 것은 정신병리학적 진단 이전에, 하나의 철학적 상태로 이해될 수 있다.

윤석열은 권력의 정점에 있다가 곧장 현실 정치에서 고립되었고, 수많은 공격과 비난, 상실과 불신 속에서 자신을 정당화할 “의미 체계”를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의미 체계는 지나치게 완결되어 있다.

—선거는 조작된다.

—국민은 속았다.

—자신만이 진실을 본다.


한때 검찰총장으로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야 했던 그의 직업적 감각은, 지금은 외부의 모든 사건을 ‘배후가 있다’는 강박적 구조로 재구성하게 만든다. 현실과 정보의 모순은 오히려 그 믿음을 강화하고, 자신만이 아는 진실이 있다는 확신은 점점 더 깊어지는 고립 속으로 밀어넣는다.


이러한 사고 구조는, 세계가 자기 중심적으로 ‘너무 잘 연결되는’ 경험, 즉 편집증적 사유의 특징이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라면—

그는, 정신적으로 위험한 지점에 도달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정치적 문제로만 보지 않고, 하나의 사유적 인간이 정신의 밤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으로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의심’은 철학의 시작이지만, 그 의심이 세계 전체를 적으로 만들 때—그것은 병이 된다.

‘연결’은 진실을 향한 도구이지만, 그 연결이 모든 것을 하나의 음모로 엮기 시작할 때—그것은 고립이다.


철학자, 예술가, 정치인, 시민—우리는 모두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의미가 넘쳐나는 시대, 정보가 과잉되고 불안이 팽배한 세계 속에서, 정신적 건강은 연결을 선택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힘에 달려 있다.


무엇을 연결할 것인가?

무엇을 버릴 것인가?

의심과 믿음의 균형은 어디인가?


이 질문은 철학적이다. 동시에 절박하다.

왜냐하면, 연결을 멈추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자기 안에 함몰된 채 붕괴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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