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피형 사랑을 했다.
상대가 싫어서도, 덜 사랑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좋아서—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감정을 숨겼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마음을 닫았고,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나를 감췄다.
그건 나만의 방어였고, 동시에 사랑이 나에게 너무나 낯선 언어였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본능인 동시에 언어이고, 기술이다.
느끼는 감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떻게 머물고 다가갈지를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나는 사랑을 배우지 못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언제나 조건이 따라붙었다.
사랑은 항상 ‘기준’을 통과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통행증 같은 것이었다.
그 결과,
나는 사랑을 주는 방법도, 받는 방법도 몰랐다.
마음은 있었지만 전달되지 않았고,
표현은 서툴렀으며, 오해만 쌓여갔다.
내 안에는 늘 이런 두려움이 있었다.
그 불안은 나를 무표정하게 만들었고, 침묵하게 만들었으며,
결국엔 사랑을 망치는 방식으로 나를 몰고 갔다.
나는 혼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다.
상대가 나를 떠날까 봐 애태우기 전에
내가 먼저 거리를 두는 게 익숙했다.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실망시킬 일도, 거절당할 일도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사랑을 망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사랑을 보호하려는 방식이었지만,
결국 사랑을 멀어지게 만든 방식이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소통의 기술이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다정한 말을 건네고,
어떤 사람은 눈빛 하나로 마음을 전하며,
어떤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기다려준다.
그 모든 방식이 사랑의 언어다.
하지만 사랑을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큰 사랑을 품고 있어도 전달하지 못한다.
사랑의 기술은 연습이 필요하다.
받아본 적 없는 사람에겐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에겐
사랑의 기술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단계가 필요했다.
내가 사랑을 두려워했던 건,
사랑이 싫어서가 아니라 실패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실패는 곧 버림이고,
버림은 나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사랑을 배우는 중이다.
마음을 꺼내는 연습,
상대의 다름을 이해하는 연습,
상처를 피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서툰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기르는 중이다.
사랑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가르쳐주고, 보여주고, 함께 익혀가는 기술이다.
그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랑을 몰라서가 아니라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기술이고,
기술은 시도와 실패와 용기로 만들어진다.
나는 지금도 느리게 배우고 있다.
내 마음을 말로 꺼내는 법,
상대를 다정하게 듣는 법,
그리고 관계 속에서 도망치지 않는 법.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감정이 아니다.
그건 서로가 함께 배우는 언어이며,
서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익혀야 하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