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선언

by 신성규

나는 서른이 되어 다시 동정으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이 결심은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지나간 모든 연인들의 흔적이 내 안에서 거대한 이상형을 만들어버린 결과다.


나는 그녀들의 눈에서 맑음을 보았고, 코에서 기품을 보았으며, 입술에서 따스함을 배웠다.

또 다른 그녀의 가슴은 욕망을 자극했고, 잘록한 허리는 생명의 곡선을, 탄력 있는 엉덩이는 생동감을 남겼다.

어떤 이는 번듯한 집안에서 나와 다른 배경을 보여주었고, 또 어떤 이는 풍족한 벌이로 생활의 안정감을 주었다.

나는 그들 속에서 예술적 감각과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끝,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는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그러나 육체와 재능만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배려로 내 삶을 감싸주었고, 사근한 태도로 내 불안을 잠재웠으며, 때로는 복종을 통해 나의 욕망을 받아들였다.

어떤 이는 지능으로 나를 자극했고, 또 다른 이는 헌신으로 나를 지탱했다.

발칙한 유혹으로 나를 흔들기도 했고, 깊은 신앙심으로 나를 경건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이제 이 모든 단편들을 합성해버렸다.

눈, 코, 입, 몸매, 집안, 벌이, 감각, 성품, 재능, 신앙까지 —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초월적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완벽한 상(像)이다.


문제는 이 완벽함이 나를 가둔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눈은 너무 흐리고, 보통 사람의 몸은 너무 평범하며, 보통 사람의 마음은 너무 일상적이다.

나는 더 이상 조각난 매력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합성된 그녀는 신의 영역에 가까워졌고, 나는 인간의 세계에서 점점 고립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동정으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이것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욕망의 과잉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상형의 압도적 그림자를 붙잡으려 애쓰는 대신, 그 환영과 거리를 두고 고독 속에서 새로운 자유를 찾으려 한다.


다시 동정으로 사는 것은, 결핍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다.

나는 이제 불가능한 여인을 좇는 대신, 내 안에 합성된 이상형과 화해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 고독이야말로 나의 해방이며, 나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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