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승리의 모순

by 신성규

중국을 이기겠다는 구호는 오늘날 세계 정치의 중심에 있다. 미국은 동맹을 모아 반도체, AI, 전력망, 안보, 금융까지 전방위적 봉쇄와 견제를 펼친다. 표면적으로는 자유주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바로 그들이 수호하겠다고 내세운 민주주의적 질서다.


민주주의는 느린 체제다. 합의를 요구하고,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권력 분산을 원칙으로 한다. 반대로 중국은 신속한 동원과 장기 계획을 강점으로 한다. 오늘날의 경쟁은 속도의 경쟁, 자원 집중의 경쟁이다. 그러니 민주주의는 불리해 보인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에 맞서기 위해서” 중국식 방식으로 변해간다. 국가 주도의 보호무역, 언론 통제, 권위적 리더십 강화, 기업에 대한 직접적 개입이 합리화된다.


하지만 여기서 근본적 모순이 발생한다.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를 닮아갈수록, 그 체제는 이미 민주주의로서의 우위를 잃는다. 자유와 개방, 다양성에서 나오는 창의성과 혁신력이야말로 민주주의가 가진 유일한 경쟁력인데, 그것을 스스로 축소시키며 싸우는 것이다. 이는 바둑에서 상대의 수를 흉내 내다 결국 따라가지 못하는 하수의 전형과 같다.


따라서 진짜 패배는 중국에 지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버리고, 자기 부정에 빠질 때 이미 패배는 완성된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패배’라기보다 ‘민주주의가 자기 힘으로 무너지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중국을 닮아가며 싸울 것인가, 아니면 느리더라도 민주주의의 고유한 힘을 지켜낼 것인가. 후자의 길은 답답하고 때로는 무력해 보인다. 그러나 역사는 증언한다. 인간의 자유와 다양성은 언제나 억압적 질서를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해왔다고.


민주주의는 ‘지는 게임’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정말로 지는 순간은 오직 하나다.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버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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