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력의 저주

by 신성규

나는 종종 내 장점을 짐처럼 느낀다. 분석력이라는 이름의 시선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마주하면, 나는 그것을 해부하듯 분해하고 원인을 추적하며 그 안의 모순을 발견한다. 이 능력은 분명 유용하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지치게 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대부분, 나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생각을 맞춘다. 욕망이 먼저이고, 논리는 그 뒤를 따른다. 불편한 모순이 생기면 사고를 바꾸어 행동을 정당화한다. 인지 부조화는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지워내는 속임수는 그들에게는 거의 본능과 같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모순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반대다. 나는 행동하기 전에 생각한다. 사건의 인과를 따지고, 결과의 모양을 그려본다. 행동은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나온다. 그래서 행동 뒤에 스스로를 속여가며 이유를 맞출 필요가 없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나는 타인의 모순이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그들의 자기기만, 불합리, 뒤틀린 서사. 그것이 마치 밝은 빛에 드러난 그림자처럼 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분석력은 칼이 되어 나를 찌른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은 진리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락한 거짓을 원할 뿐이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너무 잘 안다. 대중이란 다수가 아니라, 사고를 행동에 맞추는 모든 인간을 뜻한다. 그들 앞에서 나는 이방인처럼 서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분석을 멈추고 그들처럼 스스로를 속이며 살 것인가? 아니면 끝없이 모순을 직시하며 짜증 속에 살아야 하는가?


결국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타인의 자기방어기제를 폭로하는 데 그치면, 나는 냉소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그 메커니즘을 꿰뚫어 새로운 사고 구조와 사회적 설계로 전환한다면, 그것은 창조적 힘이 된다.

분석력은 나를 고립시키지만, 동시에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나는 자기방어기제를 넘어선 자리에 서 있다. 그것은 고통스럽지만, 바로 거기에서만 새로운 철학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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