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은 칼날이다

by 신성규

지능은 칼날이다. 그것은 사물을 자르는 힘을 가지며, 인간의 내면까지 해부할 수 있는 도구다. 날카로운 지능은 표면 아래 숨어 있는 결함과 균열을 쉽게 드러낸다. 그래서 인텔리전스를 가진 사람은 타인의 허점, 사회의 모순, 구조의 약점을 본능처럼 포착한다. 이 능력은 때로는 빛이지만, 동시에 위험이다.


칼날을 손에 쥔 자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것을 의술처럼 써서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무기처럼 휘둘러 타인을 해칠 수도 있다. 지능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언어, 행동, 표정 속에 숨어 있는 약점을 간파했을 때, 그것을 보호하는 데 쓸 것인가, 아니면 찌르는 데 쓸 것인가. 그 갈림길은 늘 존재한다.


나는 사람을 볼 때, 종종 ‘이 사람은 어떻게 무너질 수 있을까’를 직감한다. 마치 균열이 이미 드러난 도자기를 보는 듯, 충격이 가해질 지점을 예감한다. 그러면 강렬한 충동이 나를 스쳐 간다. ‘이를 파고든다면, 이 사람은 쉽게 무너질 것이다.’ 이 열렬한 충동은 날카롭고 매혹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스스로를 제어한다. 내 머리를 그런 곳에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지능은 본래 중립적이다. 그것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다만 그것을 쥔 자의 의지와 윤리에 따라 방향이 정해질 뿐이다. 지능을 공격의 무기로 쓰면 타인을 파괴하는 데 탁월해질 것이고, 이해와 보호를 위한 도구로 쓰면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 결국 지능은 도덕적 무게를 스스로 가지지 않는다. 그 무게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다.


이 점에서 지능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균열을 더 빨리, 더 정확히 감지하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의 방어선을 넘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처까지도 미리 본다. 그런 능력이 충동과 만나면, 인간은 쉽게 파괴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큰 범죄와 폭력은 지능의 결핍에서가 아니라, 지능이 윤리 없이 작동할 때 일어났다.


그러나 동시에, 지능은 구원의 가능성도 품고 있다. 그 칼날이 사람을 자르지 않고 대신 꿰매는 데 쓰일 때, 지능은 치료가 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험을 미리 감지해 막으며, 사회의 균열을 수선하는 역할을 한다. 지능은 파괴와 치유,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두 극을 동시에 지닌다. 문제는 어디에 쓰느냐이다.


나는 내 지능을 해체의 칼날로만 쓰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의 약점을 드러내고, 그곳을 찌르며 무너뜨리는 충동을 비워내려 한다. 그것은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칼날은 언제든 상대를 찌를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휘두른 자를 더 깊이 상처 입히기 때문이다.


지능은 칼날이다. 그 칼날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다. 나는 그 칼날을 휘두르기보다, 다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칼날을 가진 자가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윤리적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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