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 특히 여자들을 만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논리 속 모순을 포착한다.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작은 인지 오류나 자기모순이 내 시선을 잡는다. 나는 그것을 해부한다. 그것은 공격이 아니라, 단순히 관찰과 분석이다. 철학자의 습관과도 같다.
하지만 상대방의 반응은 달랐다. “그럼 너는 왜 나를 좋아해?” 혹은 “왜 이렇게 나를 공격해?”라는 질문이 날아온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내가 보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지만, 상대에게 그것은 자기방어 기제 속에서 느껴지는 공격으로 다가간다는 사실을.
나는 대답한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은 네 논리 때문이 아니야.” 혹은 “내가 지적하는 것은 단순히 오류야.” 말은 맞다. 그 오류는 방어기제 속에 숨겨진 것이었고, 지적되는 순간 반발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옳은가? 내가 맞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관계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인간은 적당히 숨기고, 자기방어 기제 속에서 살아간다. 약점과 상처를 감추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논리와 사실을 해부하는 것은 철학자의 일이지, 인간관계의 규칙은 아니다. 타인의 오류를 지적하는 순간, 우리는 관계의 균열을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철학자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사랑은 분석과 관찰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철학적 통찰과 지적 해부가 사랑을 방해하지 않도록, 먼저 이해와 관용을 선택해야 한다. 상대의 방어기제를 공격하지 않고, 오류를 지적하기보다, 그 너머의 인간적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 철학자는 사랑 속에서도 칼날을 거두고, 부드럽게 관계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철학자의 사랑법은, 사유와 감정 사이의 균형이다. 인텔리전스를 가진 자는 상대를 읽는 능력을 포기하지 않지만, 그것을 휘두르지 않는다. 관찰과 분석은 마음속에 담고, 표현할 때는 존중과 이해를 우선한다. 사랑 속에서 칼날은 필요하지 않다. 사랑은 지적 만족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경험이다.
여기서 나는 일반인의 사고와 철학자의 사고의 차이를 느낀다.
일반인의 사고는 주로 경험과 감정, 즉 자기방어와 직관에 기반한다. 인간은 오류를 알아차려도 그것을 곧장 방어 기제로 포장하며 살아간다. 직관과 감정은 즉각적이고 자연스럽지만, 깊이 있는 구조적 이해를 담보하지 못한다.
철학자의 사고는 논리와 관찰, 구조적 이해에 기반한다. 인간과 사회의 모순, 숨겨진 동기와 균열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고, 그것을 분석한다. 하지만 이러한 통찰은 외부에 무심코 드러낼 경우, 관계에 균열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철학자는 분석과 관찰을 마음속에 담고, 표현할 때는 윤리와 감정을 조율해야 한다.
나는 배우고 있다. 사유와 관계는 같지 않다. 논리적 통찰과 인간적 이해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며, 칼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철학자는 사랑 속에서 비로소 성숙하며, 그 사랑은 관찰과 이해 위에 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