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자기계발서와 실용적 정보서들이 가득하고, 많은 이들이 그것을 읽으며 스스로를 ‘성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서도, 사유의 훈련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가 주는 것은 대부분 이미 사회 속에서 상식처럼 유통되는 규범과 효율의 언어다. 그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빠른 길, 가장 손쉬운 해답을 제공한다. 그러나 거기서 독자는 자기만의 사유를 하지 않는다. 이미 누군가가 짜놓은 논리와 지침을 따라가며 일시적인 안도감을 얻을 뿐이다. 이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것일 뿐, 사고의 근육을 단련하는 행위와는 다르다.
철학과 문학은 이와 정반대의 영역이다. 철학은 언제나 기존의 상식과 권위를 흔들어놓는다. ‘왜 그래야 하는가’, ‘무엇이 옳은가’,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들은 어떤 실용적 정보보다 훨씬 불편하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인간은 새로운 차원의 시야를 얻는다. 문학 또한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세계를 다른 시각에서 체험하게 만든다. 우리는 문학 속에서 타인의 삶을 살고, 낯선 세계를 여행하며, 자기 감각의 폭을 확장한다. 그것은 단순히 정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훈련이다.
여기서 진정한 인사이트가 생겨난다. 인사이트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의 연결에서 비롯된다. 한 인간이 철학을 통해 질문을 배우고, 문학을 통해 감각을 넓히며, 현실 속 사건과 역사적 맥락을 통찰할 때, 단순한 정보는 생명력을 얻는다. 즉,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머릿속에 정보를 저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자기 안에서 변형시키고 재구성하여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경험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책을 많이 읽는다”는 말은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밥을 많이 먹는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무엇을 먹느냐,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소화되어 내 안의 피와 살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 독서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책을 읽고, 그것을 자기 안에서 어떻게 소화하여 새로운 사유와 감각을 만들어내는가, 바로 거기에 지성의 핵심이 있다.
결국 책은 두 부류로 나뉜다. 정보를 소비하게 만드는 책과 사유를 생산하게 만드는 책. 전자는 일시적 유용성을 주지만 금세 사라지고, 후자는 인간의 내면을 흔들며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나는 후자를 택한다. 왜냐하면 지성은 언제나 소비가 아니라 생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