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늘 똑똑해지고 싶어 한다. 더 많은 지식을 얻고, 더 깊은 통찰을 손에 쥐며, 세상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는 것을 일종의 승리로 여긴다. 이는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생존을 넘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인간 본성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성이 깊어질수록 그것은 승리라기보다 고독의 문을 열어젖히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똑똑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계산이 빠르고 기억력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낱낱이 바라보는 눈을 갖는 일이다.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 인간이 서로를 기만하는 방식, 집단이 만들어내는 위선과 자기기만까지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더 이상 ‘순진한 행복’에 안주할 수 없게 되고, 타인의 언행에서 숨겨진 동기와 모순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보인다. 이는 개인에게는 진실에 가까워지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세상과 부딪히는 불행의 시작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똑똑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똑똑해진 사람과 가까이하기를 꺼린다. 지나친 이성은 차갑게 느껴지고, 날카로운 통찰은 마치 공격처럼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말은 흔히 ‘즐겁지 않다.’ 대화는 무거워지고, 삶의 단순한 즐거움조차 분석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 같아 불편하다. 그리하여 지성은 개인의 자산이면서도 사회적 유대에 있어서는 족쇄가 된다.
이 모순 속에서 우리는 역설을 발견한다. 똑똑함은 누구나 욕망하지만, 정작 그 똑똑함을 가진 이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을 품으면서도, ‘너무 멀리 간 자’를 두려워한다. 이 때문에 인류는 늘 지성을 향해 달리지만, 일정한 지점에서 멈추거나 회피한다. 집단적 조화와 안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지성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똑똑해진다는 것은, 결국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감수하고서라도 내면의 자유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환영을 받는 길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깊게 하는 길이다. 똑똑함은 외로움과 맞닿아 있고, 동시에 인간 정신의 자유와도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진실을 보려는 대가로 고독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고독을 피하려는 대가로 진실을 눈감아버릴 것인가. 똑똑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삶을 편하게 만드는 선택지가 아니라, 오히려 삶을 더 무겁고 깊게 만드는 역설적인 선택지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이 모순 속을 떠돈다. 똑똑해지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똑똑해진 이를 멀리하는 존재로서. 지성은 인간이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가장 아이러니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