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오래도록 지능을 삶의 축복으로 여겨왔다. 빠른 계산, 탁월한 기억력, 예리한 통찰은 사회 속에서 권력과 존경을 가져다주는 도구였다. 그러나 정작 행복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높은 지능은 꼭 이로운 선물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행복은 어느 정도의 무지, 어느 정도의 망각 속에서 더 잘 자라난다.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은 종종 과거의 상처를 지우지 못한다. 누군가 던진 모멸의 말, 실패의 순간, 오래된 부끄러움조차 생생하게 재현된다. 이는 마치 뇌가 고통의 기록 장치가 된 듯한 상태다. 그러나 기억이 조금 흐릿하다면, 인간은 그만큼 더 쉽게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고통을 망각할 때 비로소 인간은 웃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능이 높다는 것은 세계를 지나치게 구조적으로, 인과적으로 이해한다는 의미다. 인간의 모순, 사회의 위선, 삶의 허무가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타인은 ‘그저 즐기자’고 말할 수 있지만, 지능이 높은 이는 ‘그 즐김이 어떻게 퇴색할지, 어떤 공허를 남길지’를 이미 알고 있다. 이렇게 예측은 곧 삶의 신비를 앗아가며, 신비가 사라진 자리에는 종종 우울이 들어온다.
반대로, 지능이 낮을 때 인간은 단순한 기쁨에 더 쉽게 도달한다. 어제의 모순을 기억하지 않고, 내일의 불안을 계산하지 않는다. 단지 오늘의 식사, 오늘의 햇빛, 오늘의 대화 속에서 만족을 느낀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바보스러움’일 수 있으나, 심리학적으로는 분명한 행복의 조건이기도 하다.
결국 인간에게 가장 큰 은총은 지능의 크기가 아니라 망각의 능력인지도 모른다. 너무 똑똑하지 않아야 하고, 너무 기억하지 않아야 한다. 지나치게 똑똑한 두뇌는 세계의 복잡성을 짊어지지만, 적당히 단순한 마음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누린다.
그래서 행복의 비밀은 역설적이다. 인간은 더 똑똑해지고 싶어 하지만, 정작 행복은 무지와 망각에서 피어난다. 진정한 삶의 지혜는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의도적으로 잊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