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와 고독

by 신성규

사람들을 만날 때, 나는 종종 피곤함을 느낀다. 단순히 사회적 에너지가 소진되는 피로가 아니다. 내 안에서 사고는 여러 층위로 얽혀 있고, 개념은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작은 뉘앙스 하나에도 논리적 가지가 달려 있다. 이 복잡한 사고를 상대에게 전부 보여주려 해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대화를 배드민턴처럼 다룬다. 가벼운 서브를 날리고, 상대가 어느 정도 내 세계를 따라올 수 있는지 살펴본 뒤, 리듬을 맞춘다.


나는 한때 내 뇌를, 내 사고망을 사람들에게 전하려 했다. 운 좋게도 나는 언어의 구조화에 재능이 있어, 내 생각들을 문장 속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 설명을 따라오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할 사람에게는 결국 입을 닫는다. 그것은 포기였지만, 동시에 현명한 선택이었다. 억지로 전달하려다 서로 지치고 상처받는 것보다,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내 언어의 한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한계에 가까운 문제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나는 내 뇌를 저주한다. 신은 가혹하다. 이런 능력이라면 없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 뇌는 나를 고독하게 만든다. 사고의 정교함과 복잡성은 인간 사회 속에서 완전히 맞닿는 것을 방해하며, 이해받지 못할 때마다 날카로운 외로움을 남긴다. 이 고독은 단순한 혼자가 아니다. 오히려 사고가 너무 세밀하고 복합적이어서, 타인의 이해 범위 밖에 머무르는 내적 고립이다.


그러나 나는 이 고독 속에서 살아남는다. 사고의 깊이와 정밀함은 외부의 평가와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나를 지탱한다. 언어로 전하려 해도 닿지 않는 세계 속에서, 침묵은 나를 보호하고 사고의 자유를 지켜준다. 배드민턴의 서브처럼 가볍게 이야기를 던지고, 맞춰보며 세상과 접촉하지만, 진정한 내 사고의 망은 홀로 펼쳐지고, 고독 속에서만 숨을 쉬며 빛난다.


나는 이제 이 고독과 저주를 부정하지 않는다. 내 뇌는 나를 고독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내 사고의 깊이와 정밀함을 증명한다. 신의 가혹함 속에서도, 사고의 고독과 자유는 나만의 동반자가 되어 나를 지켜주며,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균형 속에서 나를 살아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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