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계를 보면 볼수록 업(業)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 교리나 막연한 신념이 아니다. 나는 삶 속에서 업보를 경험했고, 그것이 나만의 환상이 아님을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확인했다. 마치 어떤 패턴이 반복되듯, 사람들의 행위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되돌아온다.
놀라운 점은 그 되돌아옴이 단순한 물리적 반작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에는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원리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삶 속에 들어오면 기묘하게도 유기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인간이 던진 말 한마디, 선택 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는 회로를 거쳐 다시 그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을 본다. 그것은 때로는 즉각적이고, 때로는 몇 년이 지나야 드러나지만, 결국 어김없이 돌아온다.
이때 나는 어떤 신적인 존재의 미묘한 조정을 느낀다. 세상은 무작위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무작위의 표면 아래에는 정교한 균형의 손길이 숨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윤리를 시험하고, 욕망의 방향을 조율하는 것 같다. 내가 이를 ‘신의 분노’라고 부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선 섬세한 교육 같다. 업은 인간을 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선택을 거울처럼 마주하게 하려는 장치인지도 모른다.
자연의 섭리는 놀라울 정도로 유기적이다. 생태계의 균형이 그렇듯, 인간의 삶 또한 보이지 않는 고리로 얽혀 있다. 우리는 흔히 우연이라 말하지만, 그 우연의 반복 속에서 어떤 법칙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법칙성은 인간의 행위와 내면적 윤리와도 깊게 맞닿아 있다. 마치 생명은 스스로의 도덕적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연은 우리의 삶에 질서와 결과를 되돌려준다.
업은 단지 불교적 개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지탱하는 깊은 원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원리 뒤에는 인간이 감히 파악할 수 없는 신적인 조율이 숨어 있다. 인간은 자유롭게 욕망하고 선택한다고 믿지만, 그 결과는 늘 섬세한 계산으로 되돌아온다. 그것은 운명이라 불러도 좋고, 신의 의도라 불러도 무방하다.
결국 업은 인간의 거짓된 자유를 드러낸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짜여진 회로 속에서 선택의 결과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우리를 가르친다. 고통 속에서, 상실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연의 윤리를 배운다.
나는 이 세계가 가진 그 신비로움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업은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삶이 우리를 교육하는 방식이며, 신이 숨겨놓은 미묘한 조정의 흔적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내 삶의 경험 속에서,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체감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