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언어, 감정, 태도를 통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문제는 이 교류가 언제나 고귀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혼이 천박한 사람과 오래 있으면, 그의 조잡한 사고, 비열한 욕망, 얄팍한 쾌락 추구가 자신에게도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마치 담배 연기 속에 오래 있으면 옷과 머리카락까지 냄새가 밸 수밖에 없는 것처럼.
심리학은 이를 ‘정서 전염’이라 부른다. 인간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감정과 태도를 모방한다. 타인의 언어, 탐욕은 자신도 모르게 내 정서의 기본값이 된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인간은 자유로운 주체이지만 동시에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과 시간을 보내느냐가 곧 자신의 영혼을 형성한다.
플라톤은 영혼의 고귀함을 지향하려면 ‘탁월한 사람들과 교제하라’고 했다. 반대로 천박한 사람은 자기 내면의 빈곤을 메우지 못한 채, 타인의 영혼까지 갉아먹는다. 그들의 욕망은 공동체가 아니라 자기 충족에만 향한다. 그 곁에 오래 머무는 것은 결국 내 영혼을 값싼 에너지로 잠식시키는 일이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개인 간의 전염은 곧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오늘날의 대중문화는 자극과 속도로 경쟁하며, 인간을 깊은 사유가 아닌 얄팍한 소비 습관에 길들인다. 정치 역시 공동선이 아닌 대중의 분노와 적대감을 선동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천박함을 제도화한다. 경제는 인간을 필요의 존재가 아니라 끝없는 욕망의 소비자로만 규정하며, 인간성마저 상품화한다. 이렇게 천박함은 문화와 정치, 경제의 구조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퍼져나간다.
그렇다고 고귀함이 전염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귀함은 천박함처럼 즉각적인 쾌락을 주지 않는다. 사유, 인내, 책임, 공감 같은 가치는 느리게, 그러나 뿌리 깊게 퍼져간다. 위대한 예술과 철학, 양심 있는 정치인의 행동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지속되는 불씨를 심고, 그것은 세대를 넘어 사회를 바꿔나간다.
모든 인간을 도덕적 우열로 재단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의 영혼을 지킬 책임이 있다. 고귀함을 추구하는 삶은 고립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영혼의 천박함은 전염되지만, 고귀함 역시 전염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전염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전염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