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속도

by 신성규

우정은 대체로 나이와 함께 엮여 이해되곤 한다. 사람들은 또래 집단에서 자연스레 친구를 만들고, 같은 세대와 공감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부터 진정한 우정에는 나이라는 조건이 붙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나와 동년배의 대화는 종종 얕거나 제한적이다. 사회를 보는 시선도, 통찰을 나누는 깊이도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버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전혀 다른 감각이 생긴다. 그들의 언어와 태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나의 내적 흐름과 닮아 있다. 세대의 간극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영혼의 진동수뿐이다. 그 순간 나는 우정이란 결국 나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속도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의 정신은 동일한 속도로 성장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더디게 익어가고, 어떤 이는 네 배의 속도로 세계를 꿰뚫는다. 나는 스스로 또래보다 빠르게 사유의 길을 걸어왔다고 느낀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삶조차도 이미 추론하고, 꿰뚫어 보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나를 재촉해왔다. 그래서 내 우정은 자연스레 위쪽 세대와 맞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통찰은 내가 살아가려는 방향과 비슷한 궤도에 있었고, 그 속도는 내 영혼이 요구하는 리듬과 일치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많은 천재들이 스물여덟을 전후해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이 100년에 걸쳐 배워가는 것들을, 그들은 20대 후반에 이미 꿰뚫어버린 것이다. 천재란 결국 시간을 압축해 사는 자들이 아닐까. 평범한 이는 사계절을 한 해에 걸쳐 천천히 살아내지만, 천재는 하나의 계절 안에서 사계절을 모두 살아버린다. 그들의 정신은 앞서가고, 그들의 감각은 깊어지며, 그들의 언어는 시대와 어긋난다. 그 어긋남은 고독을 낳지만, 동시에 그것이 그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어쩌면 천재의 죽음이 빠른 것은 단지 육체의 수명이 짧아서가 아니라, 이미 다 살아버린 영혼의 피로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생각을 곱씹다 보면, 우정의 본질도 명확해진다. 우정이란 결국 함께 술을 마시고 웃는 시간이 아니라, 세계를 꿰뚫어보는 눈을 공유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의 우정은 나이가 아니라 깊이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열 살 어린 사람이라도 같은 통찰의 리듬을 지니고 있다면 나는 그와 친구가 될 것이고, 마흔 살 많은 사람이라도 영혼의 속도가 일치한다면 그는 나의 벗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시간대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산다. 느리게 가는 자가 있고, 너무 빨리 가버리는 자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억지로 속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혼을 지키고 살아갈 길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영혼의 속도는 선택이며, 그 선택 속에서 우리는 누구와 교류할지, 누구와 거리를 둘지를 결정한다. 천박함이 전염되듯, 고귀함도 전염된다. 그렇기에 나는 고귀한 리듬, 깊은 통찰의 리듬을 지닌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우정은 결국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속도를 맞추는 문제다.

keyword
팔로워 141
작가의 이전글천박함과 고귀함의 사회적 전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