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통하는 상대는 따로 있다. 많은 사람들은 착각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들어주면 ‘대화가 통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수용일 뿐,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아니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말이 서로의 사고를 건드리고, 다시 반향을 일으켜 새로운 지점을 열어주는 과정이다. 말이 오고 갈 때 그 말이 서로의 영혼 속에서 다른 파동을 울려주고, 그 파동이 겹치며 더 깊은 사유나 감정을 낳을 때 우리는 비로소 ‘통한다’는 경험을 한다.
일방적 수용은 친절일 수 있지만, 깊이는 없다. 상대가 나를 끝없이 들어주는 관계는 위로가 될 수는 있어도, 영혼을 성장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관계는 일종의 고립을 강화한다. 왜냐하면 내 말만이 쌓이고, 상대의 세계는 나에게 닿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짜 대화는 내가 예기치 못한 각도로 다시 질문을 받거나, 내가 놓치고 있던 시야를 열어주는 순간에 탄생한다.
따라서 대화가 통하는 상대란 내 말에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이 아니라, 내 말에 자신의 사유와 감정을 걸어 반응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의 대화는 단순한 언어 교환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여는 공동 작업이 된다. 진정한 우정이나 사랑도 바로 이 지점에서 자란다. 대화가 통하는가, 아니면 단지 들어주는가. 이것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인간관계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