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자살 충동을 가진 사람들을 소방관으로 특채하면 어떨까?
그들은 이미 자기 몸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만약 그 죽음 충동이 소멸이 아니라 구원을 향한다면, 자신의 몸을 던지는 행위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타인을 살리는 행위가 된다면, 그 순간 삶의 의미는 다시 발견될지도 모른다.
불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는 단순한 직무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증명하는 강렬한 체험이다.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연기로 가득한 공간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붙잡아 생명을 구하는 그 순간, “나는 살아야만 한다”라는 이유가 명백해진다. 그것은 자기 보존이 아니라 타인 지향적 의미에서 오는 삶의 정당화다.
니체는 인간 내면의 충동을 억압하는 대신, 그것을 전환하고 승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죽음 충동 역시 힘의 의지가 왜곡된 형태일 수 있다. 파괴로 향하는 힘은 본질적으로 “강력한 변화의 욕망”이며,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면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 자살 충동을 가진 사람이 불 속에서 타인을 구하는 순간, 그는 파괴의 의지를 “생명을 살리는 힘”으로 변형한다. 이것은 디오니소스적 자기 초월, 즉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불교는 인간의 고통을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자살 충동 역시 “자아를 없애고 싶다”는 집착의 변형이다. 그런데 만약 그 집착을 타인의 생명을 위해 내려놓는다면, 그것은 자살이 아닌 보살행이 된다. 자기 몸을 던지면서도 “나를 없애겠다”가 아니라 “너를 살리겠다”가 되는 순간, 자아 소멸은 고통의 끝이 아니라 깨달음의 시작이 된다.
심리학에서 자살 충동은 종종 소속감의 단절과 자기 효능감의 붕괴로 설명된다. “나는 누구에게도 필요 없다”는 감각이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소방관이라는 역할은 극적으로 이 두 가지를 회복시킨다. 공동체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의 행동이 즉각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보상 중 하나다.
물론 이 발상은 위험하고 현실적 제약이 많다. 정신적 불안정성이 있는 사람을 극한 직무에 투입하는 것은 조직과 사회에 큰 리스크를 안긴다. 그러나 나는 이 생각을 제도적 실험이 아니라 철학적 상상으로 본다. 죽음을 향한 충동이 어떻게 삶을 향한 힘으로 바뀔 수 있는가, 그 전환 가능성을 모색하는 하나의 은유적 제안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살 충동을 제거해야 할 ‘병리적 신호’로만 본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억제하거나 약물로 눌러버리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 힘은 방향을 잃은 생의 에너지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 힘을 다른 목적, 특히 자기 초월적·타인 지향적 목적에 투입할 수 있다면, 자살 충동은 삶을 연장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다.
불 속에 몸을 던지는 소방관의 이미지는 바로 그 가능성을 상징한다.
죽음의 그림자에 사로잡힌 자가, 타인의 삶을 지키며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는 순간.
거기서 우리는 인간의 극단적 충동조차도 전환 가능하다는 역설적 희망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