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상하게도 단순하게 짜여 있다. 사람들은 마치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정해진 신호에 반응하고, 정해진 보상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이 단순화된 구조 속에서 개인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교육은 창의성보다는 순응을 가르치고, 정치 언어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구호로 잘라내며, 경제는 소비를 통해 욕망을 간단히 충족시키도록 유도한다. 복잡한 세계를 단순한 모형으로 환원해, 누구라도 이해하고 따라가게 만드는 것. 이것이 오늘날 사회 시스템의 본질이다.
하지만 그 단순성은 결코 무해하지 않다. 단순한 구조는 다수를 바보로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생각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길들여진 습관과 반복된 상징들 속에서, 사람들은 사고의 근육을 쓰지 않고도 평생을 보낼 수 있다. 그 결과, 사회의 거대한 흐름을 이해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소수의 몫이 된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소수의 천재들, 혹은 구조를 꿰뚫어보는 사람들은 바로 이 단순성 덕분에 다수를 통제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대중은 단순한 슬로건에 환호하고, 광고의 몇 초 이미지에 지갑을 연다. 언론은 복잡한 원인을 편집해 ‘악당과 영웅’의 이야기로 바꾸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 속에서 감정적으로 움직인다. 이 단순화된 회로는 곧 권력자와 전략가의 도구가 된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에서, 다수는 그림자를 현실이라 믿고 산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깊은 이해가 아니라 익숙한 패턴이다. 니체가 말했듯, 군중은 약하고, 그래서 강한 자의 인도를 원한다. 푸코의 시각에서 본다면, 억압은 필요하지도 않다. 규율과 일상적 장치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길들이고, 기꺼이 질서의 부품이 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돌아온다. 이 세계는 정말로 천재들이 바보들을 다루기 위해 고안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효율과 질서를 우선시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사고를 단순화한 구조가 만들어졌을 뿐일까? 아마도 둘 다 맞을 것이다.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구조를 설계했고, 누군가는 우연히 만들어진 그 단순성 위에서 권력을 누렸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다. 이 세계는 복잡한 진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한 구호와 반복된 규칙을 원한다. 그 속에서 사고를 지속하는 소수는 이질적인 존재가 되고, 다수는 그 단순성에 안주하며 살아간다. 세계는 결국, 천재들이 바보들을 다루기 쉽도록, 혹은 바보들이 스스로를 다루기 쉽도록 설계된 거대한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