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로작을 끊은 지 5개월째, 삶의 질은 확실히 떨어졌다. 세상이 예전보다 무겁게 느껴지고, 작은 일상조차 버거운 산처럼 다가온다. 눈을 떠도 마음은 침대에 눌러 붙어 있고,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는 바닥을 친 듯하다.
약이 없던 시절, 나는 몰랐지만, 푸로작은 단순한 약이 아니라 삶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윤활유였다. 그것이 있을 때는 감정의 파동이 조금 더 완만했고, 생각의 결이 조금 더 선명했으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작은 균열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푸로작은 나를 살짝 속였다. 감정의 날것을 부드럽게 덮어주면서, 진짜 내 안의 깊은 기질을 감추고 있었다.
지금은 그 속임수가 없다. 나는 나를 속일 수 없고, 내 안에 잠복한 우울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마치 잉크가 물속에 퍼지듯, 우울이 내 안에 번져나간다. 나는 아직 살아 있지만, 나라는 윤곽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 웃음도, 계획도, 의지도, 하루하루 잿빛으로 희석된다. 이 우울은 단순한 감정의 기복이 아니라, 어쩌면 내 타고난 기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푸로작이 있을 때는 이 파도 위에 작은 배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배마저 사라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바닥을 더듬으며, 숨을 쉬며, 우울이 나를 잠식해도 여기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약이 없다는 것은 삶을 그대로 경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감정의 모든 층위가 날것으로 드러나고, 고통과 무력함, 불안과 우울 속에서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삶의 질은 떨어졌지만, 그 대신 나의 감정은 조금 더 진짜이고, 조금 더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푸로작 없는 하루는 힘겹지만, 그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을 느낀다. 불편하고 지저분하지만, 그것이 나라는 존재의 진짜 윤곽이다. 내 인생은 우울증과 싸운 처절한 사투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