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을 다시 먹어야 할까, 나는 자주 이 갈림길에서 망설인다. 약은 내 안의 혼란을 잠재우고, 무너진 균형을 되돌려 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약은 나를 지나치게 냉철하게 만든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지면, 세상을 더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지만, 그 투명한 시선은 때로 칼날처럼 예리해진다.
나 자신에게 냉철한 것은 괜찮다. 오히려 필요하다. 나는 흔들리는 나를 다잡아야 하고, 내 안의 어둠을 제어해야 한다. 하지만 그 냉철함이 타인을 향할 때, 그것은 종종 냉혹함으로 변질된다. 내가 던지는 말이 차갑게 꽂히고, 상대의 연약함을 헤아리지 못한 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남긴다.
나는 항상 남에게 피해 주기 싫어서 약을 먹었다. 내 우울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내 냉소와 우울이 혐오스러운 것을 알기에.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가 우울의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삼킨 약이, 결국 나를 인간관계 속에서 더 멀어지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균형을 찾으려는 도구가 또 다른 불균형을 낳을 수 있다는 모순.
냉철함은 나를 살리고, 냉혹함은 관계를 죽인다. 나는 그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약을 다시 삼켜야 할까, 아니면 이 고통을 있는 그대로 견뎌야 할까. 정답은 아직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우울 그 자체보다도, 타인에게 차갑게 변해버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