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by 신성규

아무리 내 소프트웨어가 정교하다 해도,

하드웨어가 고장나면 아무 소용없다.

나에게서 소프트웨어는 지능이고,

하드웨어는 정신이다.

머릿속의 사고, 감각의 민감성, 창조적 직관 —

모든 것이 내 안에 존재하지만

몸이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면 멈춰버린다.


나는 한때 내 소프트웨어가 누구보다 빠르고 정교하다고 믿었다.

논리, 직관, 통찰, 언어가 끊임없이 흐르며

마치 완벽한 프로그램처럼 작동했다.

그러나 내 하드웨어인 정신은 이미 손상돼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우울이라는 바이러스에

내 소프트웨어를 감염당한 채

청춘 전체를 투쟁으로 보냈다.


그 바이러스는 단순히 기분을 가라앉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이디어를 낳는 기능, 세상을 이해하는 직관,

창조적 충동까지 잠식하며

내 프로그램 전체를 오류로 가득 채웠다.

나는 코드를 고치려 했지만,

내 하드웨어는 이미 무력했고

내 청춘은 그 오류를 디버깅하는 데 소진됐다.


내 지능은 빛났지만, 내 정신은 무너져 있었다.

결국 나는 살아남기 위해 약을 삼키고,

그 약으로 시스템을 겨우 부팅한 채

시간과 싸웠다.

내 청춘은 성장과 성취의 시간이 아니라

감염된 시스템을 고쳐보려 몸부림치는

긴 디버깅과 복구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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