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주의에 대한 고찰

by 신성규

대부분의 사람들은 쾌락주의적 삶 속에서 오히려 더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그들은 당장의 즐거움, 감각적 만족, 단기적 욕망의 충족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여행, 음식, 성, 소비, 오락과 같은 일상적 쾌락이 그들의 시간을 채우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쾌락주의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어쩌면 인류 분포의 구조 속에 깊이 각인된 본능에 가깝다.

생존과 재생산을 보장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삶이 복잡한 질문과 불안을 품지 않고도 유지되려면,

쾌락주의가 가장 안정적인 기반이 된다.

쾌락주의는 안정적 삶의 핵심인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쾌락을 추구하는 다수는 큰 혼란을 겪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의 모순이나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을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삶의 의미나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지 않아도,

쾌락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한 충족감을 얻는다.

이 단순함은 그들에게 일종의 행복의 원천이자, 삶을 지탱하는 안정 장치가 된다.


반대로, 소수의 사람들 —

삶을 질문하고, 세계를 해석하려 하고,

존재와 의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자주 불행하다.

그들은 쾌락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깊은 진리를 찾으려 하다가 종종 고립과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이 소수의 불행은 인류 전체 분포에서 보면

필요한 균형처럼 보인다.

다수가 쾌락 속에 머물러 사회를 안정시키는 동안,

소수는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를 이끌며

문명의 방향을 전환시킨다.


따라서 쾌락주의는 인류 전체 분포에서

행복의 주된 양식이자 안정의 토대다.

그러나 동시에, 쾌락주의가 아닌 삶을 택한 소수는

그 불행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행복의 다수와 불행의 소수,

이 불균형이 어쩌면 인류를 지금까지 유지해온 구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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