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남긴 것

by 신성규

나를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원형으로 사랑해 줄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세상은 늘 조건과 기준을 붙여 사랑을 거래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내 어두움과 불안, 때로는 날카로운 고집까지도 껴안으며 말했다. “당신이 내 손을 놓지만 않으면, 나는 영원히 함께할 거야.” 그 말은 내 삶에서 가장 순수한 약속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어린 망아지처럼 불안과 우울, 공포 속에서 발버둥을 쳤다. 그녀의 손을 꼭 붙잡는 대신, 나는 자꾸 흔들렸고, 그녀는 그 흔들림 속에서 지쳐갔다. 결국 나의 불안은 그녀를 붙잡는 힘이 아니라, 놓아버리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녀 같은 영혼은 다시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녀는 고귀했다. 단지 선하거나 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결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영혼이었다. 그녀는 나를 바꾸려 하지 않았고, 내가 스스로 되어가기를 기다려주었다. 그런 기다림과 수용은 세상에서 가장 드물고, 가장 값진 사랑이다.


나는 그 고귀한 사랑을 잃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런 영혼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대답은 부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나를 조금은 달라지게 만든다. 내가 그녀에게서 배운 사랑의 방식, 나의 불안과 결핍조차 껴안는 용기. 그것을 이어갈 수 있다면, 언젠가 나는 또다시 누군가의 손을 붙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 그녀가 보여준 고귀한 영혼은 내 안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 흔적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나를 더 깊은 인간으로 만든다. 나는 그 흔적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든 없든, 그녀의 사랑은 이미 나를 영원히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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