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공감학에서의 연기론

by 신성규

연기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배우의 감정 이입 능력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배우들이 의존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들은 자신이 실제로 경험해본 감정을 끌어와 무대나 카메라 앞에서 다시 체험하는 것이다. 사랑, 상실, 분노, 기쁨 모두 결국 자기 삶 속에서 겪었던 기억에 기반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모든 정서를 직접 겪을 수 없고, 따라서 자신과 전혀 다른 맥락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벽에 부딪힌다. 예컨대 어떤 배우가 부모의 상실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작품 속에서 그 장면을 연기할 때는 결국 ‘비슷한 개인적 경험’을 끌어와 변주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전쟁 속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규나, 특정 문화권의 애도 의식 같은 감정은 자기 경험만으로는 닿기 어렵다.


이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메소드 연기다. 메소드는 배우가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소환하여 지금 이 순간 실제로 그 감정을 다시 살아내는 방식이다. 이 기법은 단순히 겉모습을 흉내 내는 것과 달리, 내적 정서를 무대 위에서 ‘진짜처럼’ 재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메소드는 20세기 연기론에서 가장 혁신적인 접근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결국 메소드 역시 자기 경험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같은 문제를 가진다. 배우의 감정은 여전히 ‘자신이 아는 세계’ 안에 갇혀 있고, 낯선 정서를 살아내는 데에는 제약이 남는다.


나는 이 지점을 다중 공감학이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곳에서 적용되는 다중 공감학은 단일한 경험에만 매달리지 않고, 타인의 내면 구조를 겹겹이 시뮬레이션하여 공감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층위가 있다. 첫째는 자기 경험에 기반한 1차 공감, 둘째는 관찰과 학습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2차 공감, 셋째는 타인의 문화적 맥락과 심리 구조를 체화하며, 마치 그것이 자신의 정서인 양 살아내는 3차 공감이다. 세 번째 층위에서 배우는 단순히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정신을 임시적으로 거주하는 존재’가 된다.


연기에서 다중 공감학은 단지 연기의 새로운 기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경험의 감옥을 벗어나, 타인의 내적 우주로 들어가는 통로를 열어준다. 이 밖에도 상담과 문학, 정치와 윤리학에서도 이 능력은 응용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연기가 단순히 ‘나를 재활용하는 예술’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나를 비워내어 타인을 받아들이는 예술’로 발전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메소드가 배우를 자기 경험의 심연으로 이끌었다면, 다중 공감학은 그 경험의 경계를 넘어 타인의 내적 구조를 살아내는 훈련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메소드를 넘어서는, 연기와 인간 이해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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