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음악이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담아내는지를 고민해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접하는 대중음악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기쁘면 처음부터 끝까지 밝은 곡’, ‘슬프면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한 곡’. 감정이 하나의 기울기로만 이어지다 보니, 삶이 지닌 극적인 요동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클래식 음악을 떠올려 보자.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쇼팽의 소나타 속에서는 조울증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극적인 변화가 담겨 있다. 밝은 장조에서 갑자기 단조로 추락하고, 격렬한 리듬이 잦아든 뒤 고요한 선율로 전환되기도 한다. 음악은 마치 인간의 정신이 겪는 파고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그러나 대중음악은 구조적 제약 때문에 이런 다층적 변화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음악의 방향을 제안한다. 나는 이것을 “조울적 대중음악”이라 부르고 싶다. 그것은 단순히 장르를 바꾸거나 키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곡 자체가 감정의 파도를 따라 구조적으로 뒤흔들리는 음악이다. 이를 위해 네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조성 변화.
대부분의 팝 음악은 한 조성 안에서만 머문다. 그러나 조울적 음악은 장조에서 단조로, 혹은 그 반대로 급격히 전환하면서 정서적 반전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곡은 C장조에서 밝고 경쾌하게 시작하지만, 갑자기 A단조로 전환되며 불안정성이 드러난다. 청자는 그 순간, 기쁨의 표면 아래 숨어 있던 슬픔에 직면하게 된다.
둘째, 템포와 리듬의 변화.
대중음악은 흔히 일정한 BPM을 유지한다. 그러나 진짜 감정의 흐름은 균질하지 않다. 조울적 음악은 도중에 박자를 절반으로 줄이거나, 리듬 구조 자체를 바꿔버린다. 4/4 댄스 리듬으로 흥겹게 달리던 곡이 갑자기 6/8의 느린 왈츠로 전환된다면, 청자는 마치 호흡이 끊기는 듯한 극적인 전환을 체험할 것이다.
셋째, 화성 진행의 대조.
대중음악에서 흔히 쓰이는 밝은 I–V–vi–IV 진행은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그 안정감이 깨지는 순간에야 진짜 전율이 온다. 그래서 조울적 음악은 갑자기 디미니시드 코드나 불협화적 대체화음을 끼워 넣어 추락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청자는 마치 바닥이 꺼지는 듯한 체험을 하며, 음악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적 사건으로 느끼게 된다.
넷째, 편곡의 극적 전환.
처음에는 풀밴드와 강렬한 비트로 밀어붙이던 곡이, 어느 순간 피아노와 보컬만 남기며 고립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폭발하며 광적인 환희로 반전된다. 이렇게 편곡 자체가 무대 위 연극처럼 극적인 곡선을 만들어낼 때, 음악은 비로소 인간 정신의 다층성을 재현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키 체인지’와는 다르다. 키 체인지는 같은 정서를 다른 색감으로 옮겨 놓는 데 불과하지만, 내가 말하는 전환은 감정의 본질 자체를 바꾼다. 즉, 가사·화성·리듬·멜로디가 전환되면서 청자는 자신이 마치 갑작스러운 감정의 파도 속에 들어온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정서적 현실과도 훨씬 가깝다. 삶은 언제나 기쁘다가도 갑자기 슬프고, 환희 속에 불안이 끼어들며, 절망 속에서도 작은 희망이 피어오르지 않는가.
이러한 음악이 등장한다면, 대중은 노래를 단순히 ‘기분을 맞추는 배경’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더 깊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음악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인간 감정의 다층성과 극적 전환을 담아내는 예술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구상하는 새로운 음악은 이렇게 요약된다. 삶의 조울적 리듬을 음악 속에 직접 구현하는 것. 이는 단순히 새로운 장르가 아니라, 인간 감정에 대한 더 정직한 재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