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 너머의 사고, 그 흐름에 관하여
한 장의 종이에 적힌 문장은 그 사람의 얼굴을 담는다. 어떤 이는 정성스럽게 자를 대고 쓴 듯 반듯한 글씨를 적어 내려가고, 어떤 이는 마치 누가 보지 않는 일기장처럼, 자기 안의 충동만을 따라 흘러가는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묘하게도, 세상의 천재들이 남긴 수많은 노트에는 공통된 미학이 있다. 정돈되지 않은 필체, 기울어진 단어, 때로는 읽히지조차 않는 메모들.
천재란 누구인가? 그들은 평균적인 사고의 속도나 방식과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간다. 천재적인 사람들은 사고 속도가 일반인보다 훨씬 빠른 경우가 많다. 생각은 분출하듯 쏟아지고, 필기구는 그 흐름을 좇기에도 벅차다. 글씨는 그저 생각이 튀어나오는 도관일 뿐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보여주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글씨는 형태가 아니라 도구이고, 형식보다는 내용의 불꽃이 중심이 된다. 글씨 자체보다는 그 내용, 개념, 구조화에 더 집중한다. 외형보다는 내적 논리에 집중하므로, 글씨체가 흐트러질 가능성이 크다.
악필은 그래서 일종의 고백이다. 형식에 대한 무관심, 혹은 형식보다 사고의 속도를 우선시하는 태도. 천재는 언제나 자신만의 리듬에 충실하고, 사회가 정한 규범이나 아름다움의 기준을 뒤로 밀쳐 놓는다. 반듯한 글씨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이고, 천재의 글씨는 오직 내면의 흐름을 위한 상징이다.
우리는 종종 글씨에서 성격을 읽어낸다. 악필은 산만함이나 무례함, 혹은 무질서를 뜻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천재에게서의 악필은 그런 종류의 ‘무질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너무 빠르고 치밀하게 돌아가는 사고의 톱니바퀴가 외부의 형식 따위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는 시도다. 이 세계가 ‘정갈함’을 미덕으로 칠 때, 천재는 ‘속도와 흐름’을 택한다.
하지만 이 신화에도 주의는 필요하다. 악필이라고 모두 천재는 아니며, 천재가 모두 악필인 것도 아니다. 글씨는 천재성의 원인이 아니라 흔적일 뿐이다. 다만, 우리는 이 흔적을 통해 ‘사고의 자유로움’이라는 무엇을 상상할 수 있다. 글씨라는 형식을 벗어난 언어, 즉 마음 그 자체.
천재는 악필이다. 그것은 단지 글씨체가 지저분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천재가 세계를 ‘쓰는 방식’이 다르다는 선언이며, 사고가 형식을 압도하는 드문 순간들에 대한 경의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우리 모두의 안에도 조용히 잠재되어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