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언어, 미완의 감각, 통합되지 못한 영혼

by 신성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종종 방향을 잃는다. 그들이 말하는 단어는 연결되지 않으며, 그들의 주장은 이중논리로 자신을 부정하는 듯 얽힌다. 상대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어떤 승리를 얻고자 말의 칼날을 휘두른다. 대화는 더 이상 이해의 장소가 아니라, 무기를 든 전쟁터다. 나는 질문한다. 사람들은 왜 대화하는가? 설득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이기기 위함인가?


언어는 원래 타인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정제해 가는 사유의 수단이다. 그러나 현대의 언어는 너무 자주, 너무 쉽게 ‘자기 방어’와 ‘지배’의 방식으로 전락한다. 대화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기보다는, 이미 굳어진 자기 확신을 반복하며 타인을 침묵시키려 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연결되지 않은 말들을 뱉으며 자기 모순 속에 갇힌다. 말은 많지만, 의미는 없다. 이 시대의 가장 큰 불화는, 언어가 언어의 본질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예술가들과 어울려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나를 ‘천재’라 불렀다. 그러나 칭찬보다 고독을 느꼈다. 그들의 말은 대체로 얕고, 그들이 말하는 ‘깊이’는 정해진 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들은 분야 안에서 성과를 이루었지만, 세계를 건너는 감각은 부족했다. 예술은 깊이를 갈망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는 너무 익숙했고, 너무 안전했다.


그럼에도 소수의 예외가 있었다. 세계와 연결되지 못한 채, 자신의 감각을 통해 순수하게 창조하는 존재들. 그들은 무언가를 ‘이해’하기보다는 ‘느낀다.’ 하지만 그들 또한 인간혐오와 자기 모순에 빠져 있었다. 세상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은 세상을 증오했다. 나는 본다. 천재란 자기 모순을 끌어안고, 그것을 극복하는 자다. 감각을 언어로 번역하고, 고통을 사유로 정제한 자만이 진정한 천재다.


모순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것을 회피하거나 덮는다. 천재는 회피하지 않는다. 그 모순 속에 머물며, 그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감각, 언어, 사유, 고통, 고독… 그 모든 것을 하나의 몸으로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천재는 미완성으로 남는다.


진짜 천재는 대화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안의 모순과 싸우느라, 이미 충분히 많은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말보다 더 깊은 것을 원한다. 이해받지 못하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감각과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재란 단지 뛰어난 머리를 가진 자가 아니라, 언어의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사유를 멈추지 않는 자, 자기 모순을 끌어안고도 무너지지 않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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