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려운 건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다. 정보를 모으고, 논리를 세우고, 분석하는 능력은 반복과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체득할 수 있다. 그러나 똑똑해질수록 사람들은 알게 된다. 이 세상은 불합리하고, 인간은 모순적이며, 사회는 구조적으로 폭력적이라는 것을.
지능은 모든 것을 벗기고 해체한다. 인간의 감정 뒤에 숨은 진실을 드러내고, 이상 뒤에 숨어 있는 욕망을 분석하며, 정의조차도 권력의 언어로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간에 대한 혐오가 생긴다. 어떻게 이런 존재들이 ‘사랑’이니 ‘정의’니 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을 수 있는가?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점점 비극적인 존재로 인식되며, 그 비극의 총합 앞에 마음은 메말라 간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는다. ‘순수함’이라는, 지성의 균형추. 지능과 지성이 차별화되는 결정적 지점이 이곳이다. 똑똑해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순수함을 잃지 않고 똑똑해지는 것이다. 세상의 불합리를 인식하되 냉소하지 않고, 인간의 모순을 꿰뚫어 보되 연민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성의 시험이다.
순수함이란 무지함이나 유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것을 알고 난 뒤에도, 여전히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태도다. 판단보다 공감을, 해체보다 수용을 먼저 두는 마음. 이것은 아이의 마음이면서 동시에, 가장 성숙한 마음이기도 하다.
종교는 이 구조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기독교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했고, 불교는 모든 지혜가 결국 자비로 귀결되어야 함을 가르쳤다. 힌두교는 브라만에 도달하는 지(知)의 여정이 카르마와 행위(行)를 떠나서는 완성될 수 없음을 말한다. 지성의 끝은 다시 ‘순수’로 되돌아오는 순환 구조를 종교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능만 가진 자는 인간을 혐오하게 되고, 순진함만 가진 자는 세상에 휘둘리게 된다. 그러나 그 둘이 함께 있는 지성을 가진 사람만이 세상을 이해하면서도 인간을 사랑할 수 있다. 진짜 똑똑한 사람은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그 속의 인간을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