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은 단순히 생물학적 구조가 아니라, 사회적 상징으로 작동한다. 사춘기 시기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은 뼈와 근육, 목소리와 얼굴선에 흔적을 남기며, 이 흔적은 오래도록 남성성의 표식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다르다. 대중문화 속에서 남성성은 점점 흐려지고, 중성적 이미지가 시대의 새로운 미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남자 아이돌들의 부드러운 얼굴선, 화장을 통해 강조된 미묘한 곡선, 각지지 않은 턱과 매끈한 피부는 단순한 개인적 특징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집단적으로 선택한 미의 방향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남성성이 약화되는 사회는 어떤 미래를 향해 가는가?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남성호르몬 수치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연구들이 존재한다. 환경 호르몬, 운동 부족, 생활 습관의 변화, 스트레스가 모두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 문화적으로 보자면, 강인함은 공격성으로 오해되고, 리더십은 권위주의로 매도되며, 결단력은 폭력성으로 치부된다. 결국 남성성은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잔재처럼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남성성을 지켜야 사회가 유지된다고.
남성성은 단순한 호르몬의 부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을 전진시키는 에너지다. 위험을 무릅쓰고 낯선 길을 열어젖히는 힘, 공동체가 무너질 때 앞장서서 책임을 짊어지는 결단, 실패와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기개. 이 모든 것은 좋은 의미의 남성성이 가진 얼굴이며, 역사를 지탱해온 동력이다.
고대의 부족 사회에서부터 현대의 도시 문명에 이르기까지, 남성성은 언제나 사회적 모험과 방어, 재건과 확장의 순간마다 발휘되었다. 물론 그것이 왜곡될 때 폭력과 억압으로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왜곡된 남성성만을 남성성 전체로 환원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남성성을 거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화하고 재구성하는 일이다.
현대 사회가 지나치게 부드러움과 안전만을 추구할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불안정해진다. 왜냐하면 사회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위험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고, 혼란 속에서 길을 찾고,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힘은 단순한 공감이나 온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은 책임을 감수하는 남성성, 헌신과 추진력으로 표출되는 강한 에너지다.
남성성은 타인을 억압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기 위한 기둥이다. 남성성은 권위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순간 앞장서서 짐을 짊어지는 태도다. 남성성은 폭력이 아니라, 위험을 대신 감당하는 용기다. 이 차이를 분별하지 못한 채 남성성을 불필요한 잔재로 여긴다면, 사회는 균형을 잃고 결국 붕괴의 길을 향하게 될 것이다.
나는 믿는다. 좋은 의미의 남성성은 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그것은 근육이나 뼈의 구조에서 비롯된 본능이면서도, 동시에 문화와 도덕 속에서 길러지는 자질이다.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룰 때 사회는 가장 건강한 균형을 얻는다. 하지만 그 기초는 언제나 남성성의 추진력, 책임, 헌신에서 비롯된다.
현대 사회가 중성적 미학을 찬미한다 해도, 그 이면에서 여전히 남성성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문명은 단지 아름다운 얼굴 위에서가 아니라, 무너진 돌무더기를 다시 세우는 손, 불확실한 길 위에서 발을 내딛는 결단, 위험 속에서도 두려움을 감추고 나아가는 용기 위에서 건설되기 때문이다.
남성성은 억압이 아니다. 남성성은 보호이고, 끌어올림이고, 버팀목이다. 그것을 지워버린 사회는 언젠가 그 부재를 고통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본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남성성은 여전히 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