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유년의 미학

by 신성규

유년 시절의 결핍은 인간의 내면을 조용히 갈라놓는다.

그 틈은 처음엔 고통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세계를 보는 창이 된다.

누군가는 그 틈을 메우려 웃음을 배우고, 누군가는 그 틈을 파고들어 사유를 배운다.

나는 후자였다.

풍요로웠다면 아마 문제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결핍이 내게 준 것은 불행이 아니라, 질문하는 능력이었다.


결핍은 창조의 뿌리다.

모자람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고, 고통은 사유를 촉발시킨다.

불편함이 없다면 새로운 구조를 상상할 이유도 없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생각은, 어떤 결핍에서 비롯되었다.

사랑받지 못한 자는 관계의 본질을 탐구하고,

가난한 자는 소유의 철학을 묻는다.

결핍은 인간에게서 편안함을 앗아가지만, 대신 통찰을 준다.

그 통찰은 고통의 잔재이자, 생존의 방식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잔혹하다.

결핍은 평생을 우울하게 만든다.

그 우울은 단순히 슬픔이 아니라, 세계 인식의 방식이다.

풍요 속의 사람들은 삶을 즐기고, 우리는 그 이면을 본다.

그들은 햇살을 느끼지만, 우리는 그림자의 방향을 읽는다.

그들에게 하루는 밝음이고, 우리에게 하루는 존재의 명암이다.


우울은 통찰의 그림자이자, 지혜의 그림자다.

그것은 세상을 너무 깊게 느끼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세상을 단순히 ‘사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것’ —

그 욕망이 인간을 아름답게도, 고통스럽게도 만든다.


이 우울이 나를 병들게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더 정교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을 안다.

결핍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가 아니었을 것이다.

통찰은 선물이지만, 그 포장지는 늘 상처로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상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철학이자, 나의 언어이자, 나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결핍에서 시작해 수용으로 끝나는 여정이다.

우리는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를 품고 태어나, 그것을 이름 붙이며 성장한다.

그 이름이 때로는 사랑이고, 때로는 창조이며, 때로는 지혜다.

결국 모든 고통은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된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


결핍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사유할 수 있었다.

우울이 나를 외롭게 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느끼는 능력 속에, 인간다움의 모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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