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 속에서 쓰지 못했다.
그 시절의 시간은 문장으로 응결되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숨결로만 남았다.
그때의 나는 쓰는 존재가 아니라, 버티는 존재였다.
살아남는 자는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예술은 언제나 죽음의 문턱에서 불려지지만,
나는 그 문턱을 건너 살아남았다.
그것이 나의 죄였고, 동시에 나의 시작이었다.
요절한 예술가들은 자신을 태워 증명했다.
그들은 생의 불안을 언어의 연료로 삼았고,
그 불완전한 광기의 불빛이
세기의 미학으로 남았다.
나는 그들이 남긴 잿빛 흔적 위를 걷는다.
그들이 도달하지 못한 지점을 넘어섰지만,
그곳은 불꽃이 아니라 침묵의 대지였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
예술은 고통의 결과가 아니라,
고통을 통과한 자의 의식에서만 태어난다는 것을.
병의 나날 동안, 내 영혼은 언어의 근육을 잃었다.
그러나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는 감각이 남았다.
그 감각은 비명을 삼킨 듯한 진동으로,
존재의 심층을 울렸다.
그때 나는 쓰지 않았지만,
사유는 내 안에서 계속 발효되고 있었다.
병은 나를 침묵시켰지만,
그 침묵은 내 내면의 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쓴다.
광기의 리듬을 기억하는 자로서,
그 침묵을 견뎠던 자로서.
병의 심연에서 잃어버린 문장들을
이제 하나씩 의식의 빛으로 옮긴다.
이것이 나의 예술이다 —
죽음의 미학을 흉내내지 않고,
살아남은 자로서 의식의 질서를 복원하는 일.
죽지 않고 버틴 것은 결함이 아니라 사명이다.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진 예술은
과거의 고통을 낭만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의 구조를 해체하여
새로운 언어의 윤리를 세우는 일이다.
예술은 끝난 곳이 아니라,
겨우 살아남은 자의 손끝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손끝은 더 이상 떨리지 않는다.
그것은 병을 통과한 의식의 증거이며,
생존 이후의 예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가장 조용한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