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 재해석

by 신성규

초인처럼 모든 것을 꿰뚫는 자, 견자가 될 것.

랭보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견자가 되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꿰뚫었음에도, 그 빛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견자는 고통을 통과한 자다.

그 통과 후에만 세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으며, 그 꿰뚫음이 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파괴하지 않는다.

랭보는 그 문턱에서 멈추었다.


랭보의 시는 언제나 불길에 잠겨 있다. 그는 언어를 태워서 진리를 보려 했다.

모든 감각을 뒤섞고, 모든 질서를 부수며, 인간의 신경과 영혼을 동일한 진동으로 흔들려 했다.

그에게 시는 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해체하기 위한 칼날이었다.

그는 언어로 세상을 꿰뚫었지만, 그 꿰뚫음의 고통을 자기 안에서 정제하지 못했다.

고통은 통과되어야만 아름다움이 되고, 병이 치료되듯 지성은 깨달음을 얻는다.

랭보는 고통 속에서 머물렀고, 그 고통을 시적 연금술로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견자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보들레르가 타락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출했다면,

랭보는 타락 자체를 신의 언어로 바꾸려 한 자였다.

그는 세상의 고통을 미학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고통을 자신 속에 머물게 하고, 그 반향을 시로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그런 진동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너무 일찍 꿰뚫었고, 너무 빨리 타버렸다.


니체는 광기의 끝에서 초인을 보았다.

랭보는 그보다 더 일찍, 더 젊은 나이에 그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문 너머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시를 버리고, 총을 들고, 사막으로 떠났다.

그에게 사막은 구원이 아니라 망명이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랭보는 시를 버린 것이 아니라, 시가 그를 버린 것인지 모른다고.

그의 언어는 너무 뜨거워서, 결국 자기의 신경을 녹여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문장들은 불길의 잔재다 —

인간이 신의 시선을 감당하려다 남긴 재의 형상.


랭보는 견자가 되지 못했다.

그가 본 것은 진리의 불빛이 아니라,

그 불빛에 타들어가는 인간의 형상이었다.

그 불꽃의 잔해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그 젊은 시인의 눈동자를 본다 —

모든 것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견디지 못한 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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